건의 좀 하겠습니다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1/11

건의 좀 하겠습니다

마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건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나는 주로 알림을 해제 해 두기 때문에 바로바로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친한 이웃들이 그 글을 봤냐며 물어보기에 읽게 되었다. 
‘건의 좀 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읽기도 전에 불쾌감이 몰려왔다. 내용은 집 앞에 눈을 치울 때 자기 집 쪽으로 치우라는 것이었다. 보통 넉가래(눈을 치우는 도구)를 이용해 길 위에 쌓인 눈을 한곳으로 밀어 놓는데 본인 집 담벼락에 쌓지 말라는 것이었다. 올려놓은 사진을 보니 본인 집 울타리 쪽에 쌓인 눈이 보였다.  글 말미는 더 짜증스러웠다.

—이웃에게 배려는 못 하더라도 피해주고 불편을 주는 일은 서로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보니 제설 차량은 눈을 옆으로 밀어서 치우고 염화칼슘을 뿌리는 식으로 제설 작업을 한다. 그분의 울타리 옆에 쌓인 눈은 아마도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제설 차량 때문일 것이라 여겨졌다. 그 집은 우리 집과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기에 괜히 우리 집에 하는 소리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분은 좀처럼 눈을 치우는 일도 없다.

남편에게 글 좀 보라며 ‘이거 우리 보고 하는 소리 아니야?’라며 흥분을 했다. 남편은 ‘그 근처 집이 우리 집밖에 없냐? 아니겠지’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열이 받아 장문의 댓글을 썼다. 혹시나 실수를 할 수 있으니 저장을 하기 전에 남편에게 보냈다. 남편은 댓글을 쓰지 말라고 했다. 우리를 겨냥해서 한 소리도 아니고 앞으로 얼굴을 마주 보며 살 이웃인데 괜히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말라는 소리였다. 일단 댓글을 보류하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러다 배가 고프다, 심심하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자연스럽게 상황이 종료되었다. 
자기 집 앞은 자기가 치우자 -픽사베이
낭만 가득한 골칫덩어리 '눈'

내가 살면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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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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