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선택한 삶

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2/09/15
얼마 전 배우자에게 선물을 받았다. 레몬그라스 향이 나는 화장품이었는데 친환경 생산을 하는 스웨덴 브랜드였다. 향은 자극적이지 않았고 발림성은 우수했으며 끈적임도 적었다. 리필 화장품과 고체 화장품을 주로 쓰다 보니 딱히 새로운 용기에 든 화장품을 구입할 일이 없었다. 쓰던 용기에 새로 담아 쓰거나 종이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팩에 든 화장품을 구입하다 보니 펌프 형태의 화장품 용기도 생소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삶에 새로운 플라스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재활용 가능한 페트 소재의 화장품 통에는 '재활용 어려움'이 적힌 펌프가 붙어있었다.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펌프는 씻어서 계속 쓰는 것이 그나마 나은데 글리세린이 잔뜩 들어있는 화장품을 씻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로 씻어야 한다. 배우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지만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친환경 제품이 담겨 있는 용기의 문제점과 스웨덴에서 한국까지 가져오기까지의 탄소 발자국을 생각하면 국산 리필제품을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선물해준 사람에게 할 수 없다. 친환경을 하고 싶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들어오는 선물을 감사히 받아야 하는 것은 힘들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지 않은 바를거리와 고체 씻을거리를 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식구들은 난감해했다. 짜서 쓰고 거품도 풍성한 액체 씻을거리에 익숙해져 있던 식구들에게 불편함을 주겠다는 말이었으니까. 사용하던 펌프 통을 마지막으로 바를거리는 덜어 쓰는 통으로 교체하였고, 치약과 샴푸 같은 씻을거리는 고체로 바꿨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숙하게 받아들이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화장실을 사용하고 화장대에서 로션을 빌려 쓰기도 한다. 샤넬, 바비 브라운, 맥, 키엘 같은 브랜드 제품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던 곳이 이름도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정체불명의 용기들로 채워진 모습을 보며 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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