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건 아니다 - 5. 우매한(?) 철학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12/29
엄마가 편지를 매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언니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일이 바빠 집에는 며칠 후에 온다고 했다. 이산가족이 나오는 방송을 보고 자기도 많이 울었단다. 돈을 버는 대로 아껴 쓰면서 얼마 전엔 방 두 칸짜리 아파트를 샀고, 방 한 칸은 근처 G대에 다니는 여학생이 자취를 하고 있으며, 새집이 아니지만 엄마아버지 두 분은 모실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엄마는 ‘집’을 샀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큰애는 분명히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잠도 안자고 일만했을 거라고 혀를 찼다. 언니는 대구에 있었다. 서울에 태어나 한 번도 다른 지역을 떠나본 적 없는 내게 대구는 언니를 상징하는 곳이 됐다. 방 두 칸을 자기 돈으로 마련한 언니는 이제 성공한 걸까. 편지엔 영식이아저씨에 대해 한마디도 없었다.


남동생 주영이는 S공고를 나와 S건설 공채에 입사했다. 아들을 앞세우고 동네를 걷는 엄마 눈엔 자랑이 묻어났다. 당시 주영이는 동계진학 혜택이 있었지만 H공대에 떨어졌다. 이후 대학의 미련을 버렸다. 첫 근무지는 부산이었다. 엄마의 노심초사가 언니에게서 주영이로 옮겨졌다. 끼고 살던 자식을 타지로 보내며 걱정하는 통에 아버지는 엄마에게 걱정노친네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즈음 나는 직장생활에 멀미가 찾아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했다. 그림을 그린다고 남영동 삼각지 근방의 화실을 돌아다녔다. 은행잔고가 줄어들었다. 화실을 중단하고 만화영화학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윤희를 만났다. 윤희는 내가 무역회사 다닐 때의 미스명 언니가 들어간 같은 대학교를 졸업했다. 
   
   
집에서는 선이 들어왔다. 엄마는 선자리가 괜찮다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언니도 있는데 왜 자꾸 선을 보게 하냐고 짜증을 냈다. 언니는 자기 ‘사업’이 있단다. 나도 내 사업의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대학이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왜 지금 대학이냐고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었다. 집에 도움 없이 내 힘으로 가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노량진 입시 단과반을 다녔다. 끝나고 집에 오면 다시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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