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뷰] 10대에 불태운 열정, 그 이후의 이야기

.

처음 프로필을 보고 여성이라고 짐작했습니다. 흐릿한 사진 속 어깨까지 늘어뜨린 단발머리만 보였기 때문일까요.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글로 상식을 깨 오던 재랑 얼룩커(이하 재랑님). 1일 서울시 은평구 한 카페에서 드디어 그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엔 말끔한 검은 양복 차림의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프로필에 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프로필은 언제 찍은 건가요.
2010년 토론대회 나갔을 당시의 사진입니다. 제가 가장 예쁠 때죠. 사진을 찍은 직후 대학에 입학하던 때에 50kg도 되지 않았습니다. alookso에 글 쓸 때만 해도 이렇게 직접 인터뷰할 줄은 몰랐네요(웃음).

-당시 흔치 않았을 텐데, 왜 단발 머리를 했나요.
일부러 여장한 건 아니었고, 당시 자퇴한 상태였어요. 학교의 억압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머리를 기르고 다녔습니다. 남자 화장실 가면 다 쳐다보고, 버스 탈 때도 '청소년입니다'라고 찍히면 다 물어보더라구요. 사람들이 항상 존댓말을 했습니다, 청소년이라고 생각을 안 했던 거죠.

재랑님은 평범하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2008년, 고등학교 1학년에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12시까지 학교 특강을 듣고, 그 후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면 어느새 새벽 2~3시. 다시 6시에 일어나 학교를 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촛불로 가득한 거리, 새로운 학교로 삼다
출근을 앞두고 양복을 입은 재랑 얼룩커.

-자퇴를 생각한 이유는요.
입시 공부를 하며 포기해야 할 일들이 많았어요. 야자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지도 못 했죠. 당시에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등의 책을 읽었는데, 둘 다 주인공이 자퇴생이었어요. 그들처럼 탈출하고 싶었죠. '수레바퀴 아래서'는 사실 결말이 비극적인데 거기까진 안 읽고(웃음). 남고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도 싫었어요. 선생님이 학생들을 때리기도 했었구요. 이런저런 이유들로 고등학교를 두 달 다니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17살, 학교를 떠난 재랑님은 거리를 찾았습니다. 2008년 5월엔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한창이었습니다.

-정당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촛불집회 이전인 2008년 3월 진보신당이 창당했습니다. 당시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총선에서 탈락하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열풍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원 경력도, 경험도 없었지만 정당 활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인터넷으로 입당을 신청했죠.

-미성년자였는데 어떤 활동을 하신 건가요.
2008년 8월쯤부터 오프라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진보신당 울산시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어요. 지역 뉴스에 방송되면서 부모님이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정당 활동이 보편적이지 않아 위험하다고 보셨습니다. 울산광역시에 당시 활동하는 청소년 당원이 저밖에 없었어요.
청소년위원회 위원장 겸 울산시당 편집위원 직책을 맡아 소식지를 만들었습니다. 연말이 되면 정당 후원한 사람들의 목록을 엑셀로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할 서류가 정말 많았죠. 울산시당에서 캠프로 파견 보내면 가서 일손도 도왔습니다.

10대의 재랑님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울림을 느꼈다고 합니다. 만 25세가 되면 국회의원 출마도 가능했기에, 재랑님은 울산에서 대학을 다니며 활동을 계속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한계를 느꼈습니다.

-정당 활동을 그만둔 계기는요.
2008년 총선과 2009년 재보궐 선거를 거치며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특히 2009년엔 조승수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고, 다시 민주노동당과 합쳐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어요. 청소년기를 바쳤는데 허망해졌습니다.
-다시 토론대회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촛불집회 때 만났던 친구들 소개로 부산에서 열리는 토론대회를 알게 됐습니다. 2010년 8월쯤이었을 거에요. 다른 학생들은 교육감 선거권 정도만 주장을 하더라구요. 전 나름대로 정당 활동을 오래 했는데 할 말이 많았어요. 자퇴생으로서 자부심이 있었고, 토론에 쏟아냈습니다. 5살에게도 허락되는 민주주의는 그 기억을 추린 글입니다. 당시 토론대회 사전문을 제출해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사교육으로 시작된 또다른 인생

정당에 청소년기를 바쳤던 재랑님. 불안한 미래, 대학을 가려고 찾은 논술학원에서 선생 H를 만났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내 알 바[Arbeit]가 아니다) 단발을 한 재랑님에게 존댓말을 쓰며 담배를 함께 폈지만, 다음주에 미성년자인 걸 알고 바로 말을 놓았다는 H. "구린 어른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재랑님의 예상대로,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정당 활동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H는 제가 사회학과에 간다고 하니 뜯어 말렸어요. 이미 10대에 사회 활동을 너무 많이 했다고, 대신에 서사 창작과 문창과를 추천하더군요.
결국 사회학과에 진학했는데, 너무 안 맞아서 문학 수업만 들었습니다. 제가 속한 정당이 사실상 정치적, 사회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니 보람을 못 느꼈어요. 우리가 생각한 목표를 사회적으로 반영하려 한 건데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 괴리와 모순, 방황과 외로움을 글쓰기로 달랬습니다.
한편 제가 입시에 실패한 대신, H는 저에게 학원 알바 자리를 소개해줬어요. 그 이후 지금까지 사교육 경력이 10년, 지금 학원은 5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 H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H는 제 논술 선생이었지만, 학교 선생님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저를 보고 '얘는 이상한 애다'라는 걸 알아챘죠. H와 친해지며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사교육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먹고 살아야 했지만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학생들을 만나며 함부로 이 친구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오히려 많이 느낍니다. 글로도 썼지만("반말은 되지만, 친구는 안 돼"), 강사의 윤리와 친구의 윤리는 분명 달라요. 친구로 보면 욕심을 부리게 되니까 학생들을 친구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나이 차이, 지식 차이가 있으니 오히려 학생들에게 평등하게 논의하자라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있어요. 가끔 친해진 학생들에게 자퇴했다고 말하지만, 인생에 옵션은 많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수능 끝나면 죽을 것 같지만서도, 나도 수능 망친 사람인데 별거 없다고도 말하죠.

-불안해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학생 때는 사실 쉽게 생각했어요. 대학 따윈, 수능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걸 쉽게 생각하잖아요. 대학 다닐 때도 그저 수능 점수 맞춰 대학 왔다는 친구들을 좋지 않게 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 잘 해서 대학 잘 가라고 합니다. 10대의 에너지를 가지고 저는 제 맘대로 살았어요. 인생은 완전하지도 않고 후회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후회할 때의 외로움을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해요. 엄마, 선생, 사회탓을 할 수가 없죠. 20대 중반쯤에 그 외로움이 정말 컸어요.
전 '하고 싶은 게 있는 학생'이 천재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게 불분명한 친구에게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해라"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합니다. 그렇다면 10대를 덜 후회하도록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강사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라"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 대학 가라"라고 권유합니다. 저처럼 살겠다는 학생 있다면 무조건 말릴 거지만, 결심이 확고하다면 지지할 거에요.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하고 있는 재랑 얼룩커.
'밥벌이로서의 사교육' 그 이상의 시선

재랑님은 '밥벌이로서의 사교육'을 주제로 매주 alookso에 글을 연재 중입니다. 살아오며 겪은 경험, 교육에 대한 생각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꼰대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꼰대가 '나는 꼰대'라고 말하면서 꼰대 짓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젊은 사람들의 문화를 잘 알아, 어울릴 수 있어"라고 자신하는 사람이 제일 위험합니다. '내가 꼰대라는 걸 인지하기 때문에 괜찮아'라고 인지하고 말하는 거죠.
전 학생들에게 '좋은 꼰대'가 되고 싶어요. 꼰대 안 되려는 시도 자체가 구리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냥 제대로 된 어른으로 기능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사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보통 사교육 하면 거대 기업들을 떠올리는데 그건 성공한 연예인 보는 것과 같아요. 동네 사교육 시장은 연습생의 삶이랄까요. 동네 학원 강사는 사실 베이비시터에 가깝습니다. 방과 후 돌봄교실이 5시에 끝날 때, 초등학생 아이는 학원으로 와요.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그럼 동네 학원에 오는 엄마들은 퇴근 때까지 아이를 맡아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해요. 큰 학원은 돈이 안 되니까 그런 학생들을 한명 한명 받지 않고, 결국 저 처럼 작은 학원 강사들이 떠맡게 되는 거죠. 보육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니, 그걸 어설프게나마 메꾸고 있는 게 지금의 사교육이에요.

-글에서 공교육의 역할도 언급하셨어요.
당연히 공교육은 시민 교육, 보편 교육이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교육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하지만 당장 공교육 밖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저소득층 학원 바우처 제도'라도 도입했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의 역할을 기대하며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데 국공립 어린이집과 달리 일반 학원은 전혀 지원을 못 받습니다. 결국 학원비는 학부모들이 온전히 감당하고 있죠.

-'사교육의 준공영화'는 무슨 뜻인가요.
지금의 입시 정책은 2등급 이상을 위한 이야기이고, 4등급 밑의 아이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더 낮은 학생들을 위해 가야 하고 지금은 그 과도기예요. 사교육이 어느 정도 그 자리를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원 강사들 중에 일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차라리 정부가 더 개입해서 학교 방과 후 수업에 채용하면 어떨까요. 학교 선생님들은 행정업무가 기본적으로 많은데, 상대적으로 학원 선강사는 수업 준비할 시간이 많잖아요. 교육 철학이라기보단 제가 마주한 현실에서 보면 상상력이 필요하죠.

밀려드는 우울증을 글쓰기로 달래다
.

재랑님은 현재 정의당의 당원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동료들은 지금도 정당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월,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은 재랑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그 사건 때문에 제가 하는 활동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어요. 무력감과 우울감이 밀려 오더라구요. 오후 3시까지 출근이면 2시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나왔습니다. 와이프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무조건 카페에 가서 앉아라" "하루 하나씩 글을 써라"라고 하더군요. 제 글은 우울함을 달래기 위한 글이에요.

-alookso에 글을 쓰며 변한 점이 있나요.
매일 제 글을 읽는다는 점이죠. 사실 그 전엔 제 글을 이렇게 깊이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 혼자 글을 쓰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만 했어요. 한 주 한번 마감은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일단 글을 써 두자고. 물론 엉망인 글도 많아요. alookso에서 따뜻한 반응을 많이 받아서 감사합니다.
alookso 프로젝트는 글을 쓰기 위한 고민들이 분명 당신의 삶과 일상을 바꿀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그랬습니다. 다른 분들도 프로젝트 끝나고 계속 글을 쓰셨으면 좋겠어요. 자주 교류하는 분들은 나중에 술 한잔 하고 싶네요.

by 김진웅 에디터

이 글의 작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