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결핍이라 쓰고 그리움이라 읽는다
2023/06/12
J에게,
내가 사는 뉴잉글랜드에 날카롭고 스산했던 바람이 물러가고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햇살이 바람에 흩날리는 봄이 찾아왔어. 영원히 동토에 살 것만 같았던 지난겨울에는 차갑고 시린 내 손발에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내 마음마저 옹졸해지는 것 같았는데, 봄 햇살에 마음이 부풀어 올라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암탉을 좇아가는 병아리처럼 따라와.
네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되어 간다. 올해 설날에는 너의 아이 D에게 책 몇 권을 우편으로 보냈어. D에게 새해 선물로 뭘 보낼까 고민하면서 내가 고를 줄 아는 선물이 책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아쉽기도 했고 한편으론 책이라도 고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어. 미국 작가가 쓴 그래픽 노블 몇 권과 국내 작가의 동화를 고르면서 D가 멋지게 한 해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멀리서 사는 이모가 D를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랐어. D에게 너의 빈자리가 너무 크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허황한 꿈은 애당초 꾸지도 않았어. 그러기엔 D에게 네 자리는 크고 넓었으니까.
그날 나는 싱가포르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덥지만, 여유 있는 토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었어. 큰아이는 남편과 함께 테니스 수업을 하러 갔고, 나는 작은 아이와 거실에서 레고로 도로를 만들어 레이싱카 놀이를 하고 있었어. 이른 아침부터 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어. 한 달 전 너의 생일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10월에 잠깐 한국에 들어가니 그때 만나자는 인사를 나눈 터라 네가 나에게 한국에 오면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던가, 요즘 핫한 곳을 미리 알려준다던가, 아이들과 같이 갈 곳을 알아냈다는 정도의 메시지일 것으로 생각하고 메시지를 열었어.
‘OOO의 배우자 ㅁㅁㅁ 께서 별세하셨기에’로 시작하는 <부고> 메시지였어. 너와 너의 남편 이름, 그리고 사이에 배치된 ‘의 배우자’를 읽고 또 읽었지만, 이 부고 메시지가 도대체 누구의 부고를 뜻하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없었어. 핸드폰을 오른손에 쥐고 마네...
내가 사는 뉴잉글랜드에 날카롭고 스산했던 바람이 물러가고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햇살이 바람에 흩날리는 봄이 찾아왔어. 영원히 동토에 살 것만 같았던 지난겨울에는 차갑고 시린 내 손발에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내 마음마저 옹졸해지는 것 같았는데, 봄 햇살에 마음이 부풀어 올라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암탉을 좇아가는 병아리처럼 따라와.
네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되어 간다. 올해 설날에는 너의 아이 D에게 책 몇 권을 우편으로 보냈어. D에게 새해 선물로 뭘 보낼까 고민하면서 내가 고를 줄 아는 선물이 책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아쉽기도 했고 한편으론 책이라도 고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어. 미국 작가가 쓴 그래픽 노블 몇 권과 국내 작가의 동화를 고르면서 D가 멋지게 한 해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멀리서 사는 이모가 D를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랐어. D에게 너의 빈자리가 너무 크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허황한 꿈은 애당초 꾸지도 않았어. 그러기엔 D에게 네 자리는 크고 넓었으니까.
그날 나는 싱가포르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덥지만, 여유 있는 토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었어. 큰아이는 남편과 함께 테니스 수업을 하러 갔고, 나는 작은 아이와 거실에서 레고로 도로를 만들어 레이싱카 놀이를 하고 있었어. 이른 아침부터 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어. 한 달 전 너의 생일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10월에 잠깐 한국에 들어가니 그때 만나자는 인사를 나눈 터라 네가 나에게 한국에 오면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던가, 요즘 핫한 곳을 미리 알려준다던가, 아이들과 같이 갈 곳을 알아냈다는 정도의 메시지일 것으로 생각하고 메시지를 열었어.
‘OOO의 배우자 ㅁㅁㅁ 께서 별세하셨기에’로 시작하는 <부고> 메시지였어. 너와 너의 남편 이름, 그리고 사이에 배치된 ‘의 배우자’를 읽고 또 읽었지만, 이 부고 메시지가 도대체 누구의 부고를 뜻하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없었어. 핸드폰을 오른손에 쥐고 마네...
[합평]
글쓴이는 결핍을 단순한 관계의 부재가 아닌,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인식한다. 여기서 수동적이며 양적인 결핍이 능동적이며 질적인 관계로 재인식된다는 인상을 받는데, 친구의 상실에 따른 결핍의 감정이 다른 이들과의 능동적 관계에 스며드는 전파 내지는 전염의 성격으로 관찰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관계라고 부르는 것들의 많은 지분이, 사실은 상실과 결핍이라는 모자라고 부족한 상태를 그보다 더 큰 애정으로 채워버린 누군가들의 그리움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에너지 보존법칙을 어긋난 것처럼 보이는 마음의 역학이지만, 실은 상실로 여긴 대상이 상실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평]
편지 형식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친구의 자리에 대한 결핍을 그려낸 글일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서는 단순히 친구의 빈자리를 그려낸 것이 아닌, 조금 더 본질적인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그려진 느낌입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며 아멜리님의 감정이 와닿아, 마음이 아렸어요. 단지 친구 하나만을 떠나보낸 것이 아닌, 나 자신이 그리워하고 있는 그 감정. 단순히 '보고싶다'는 말로, '비어있다'는 말로만 풀어질 것이 아닌 그 감정이 먹먹하게 와 닿았습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다시 현재로. 매끄럽게 전개되는 시제의 변화가 글 속에 더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일까. 어떻게 만난 것일까. 어떻게 이별을 하게된 것일까. 읽어내려가며 계속해서 궁금증이 생겨났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며 더 깊이 글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을 감사히 읽고 갑니다.
* 이번에는 시간 부족으로 평소와는 달리 댓글로 합평을 하게 되었습니다ㅠㅠ
@빅맥쎄트 해외살이의 가장 큰 단점은 보고 싶은 사람을 마주하기가 어렵고, 목소리 한번 듣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상황에서 친구를 먼저 보내고 나니 허망한 마음은 더 없이 컸고요.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지 모르니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마음부터 보여주기로 결심했어요. 그게 어쩌면 먼저 떠난 친구와 제가 한 약속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마음으로 글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박현안 멀리 있을거라 여기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이별이 불현듯 우리 옆 자리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이게 진짜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상실이 때론 주변에 마음을 주고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 나누고 살아요, 우리!
@살구꽃 살구꽃 님의 엄마도 친구도, 저의 친구도 우리가 만든 우주 어딘가에서 진하게 사랑과 우정을 나눴고, 언젠가 시공간이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 그 사랑과 우정을 확인하며 더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라 믿어요. 저는 나일롱 천주교 신자이고 윤회를 믿는 것은 아닌데 그냥 백년이 채 안되는 인간의 삶이 너무 짧고 덧없어 보여서 이번 생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나 왁자지껄한 시간을 다시 한 번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리움이 많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수도 있고요. 글로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해요.
@콩사탕나무 친구 이야기를 쓰면서 그리움은 쓰고 또 써도 채워지는 것 같아요. 굳이 애써 비워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다른 모습으로 채워지는 그리움이 있네요.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고요.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나철여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저 슬픈거 같아요. 슬프다가도 배는 고프고 실없는 소리에 웃는 것을 보면 사는 건 또 다 이런가 싶기도 하고요.
애틋한 사랑 고맙습니다.
@민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직 멀리 있다 여겼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요.
@피아오량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그 마음 다 받을래요!!
글에도 마음이 묻어나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똑순이
마음에 날개를 달고 보내고 싶은 곳으로 모두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따뜻한 마음 나눠주셔서 고마워요!
[합평]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린 충격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조금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로 친구 남편의 죽음을 마주하며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아멜리님의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당시 문자를 받고 공기가 바뀐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소식을 접하기 전 내 삶이 버거워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이나 그나 그녀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너라는 우주가 내가 만든 우주에서 사라진거야.
이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멜리님의 아름다운 언어로 써 내려간 이야기 속 친구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절절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 글로 조금이나마 아픔을 덜었기를 바랍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어려운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합평]
길을 걷다가 슥 지나가는 한 사람이 눈에 띌 때가 있어요. 저는 한 동안, 아니 지금도 백발이 성성한 등굽은 여성어르신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갈 때는 그 지점에서 그대로 멈춰져요. 아닌데, 아닌 줄 알면서도 엄마인양 엄마를 느끼고 싶어서요. 눈 앞에서 멀어질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이 차차 희뿌예질 때까지. 어디선가 노랑나비 한마리가 내 눈앞에 팔랑거린다면 또 그게 나를 따라온 엄마같아서 다시 내 몸과 마음은 우뚝 서서 눈을 떼지 못해요. 아, 엄마가 지금 나를 보러 온 걸까. 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구나. 그래, 이서방도 잘 있지? 평소에 했던 엄마의 말이 육성으로 들리는 착각에 아주 잠깐이라도 기꺼이 빠져보고 싶은 안타까움, 이제 겨우 일년이 넘었어요.
이게 합평인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들어가니 내 13살 삶에는 또 한 친구가 있군요.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학교를 자퇴한 건 괜찮았는데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건 서서히 통증으로 다가왔어요. 그 통증이 아마 내 안의 결핍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추억은 경험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하는데, 사춘기 정점의 기억중심에 친구가 있어요. '피아노 앞에 같이 앉아 연탄곡을'치거나 '전봇대 앞에서 다리가 아플때까지' 이야기를 나눈 장면은 아니지만, 오동나무 마른 이파리에 목마와숙녀를 빼곡하게 적어주고 내 문학의 정서를 잊을만 하면 나비처럼 날라와 응원하던 친구.
'내가 만든 우주'안에서 엄마와 친구의 우주가 지금도 멀고도 아주 가깝게 왔다가 가요. 어느날, 우리는 다시 만날테고 그때는 저도 '달려가 진하게 안아주고' 싶어요. 엄마도 친구도 기쁘게 맘껏.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합평]
추억이 많을수록,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상실의 아픔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죽음은 단순히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아닌, '너 라는 우주가 내가 만든 우주에서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먼저 떠나버린 친구는 말이 없지만, 남은 사람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다짐을 하게 된다.
글쓴이는 한 때 반장도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잘했지만, 사람들을 폭넓게 사귀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관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본다.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이 아닌,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싶어 하는 마음을 통해 소중한 사람과 내면 깊숙히 연결된 삶을 동경하는 것을 엿볼수있다. 이러한 마음은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절실히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신체의 고통을 나누는 대신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을 선택한 친구의 모습에서,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은 결국 주어진 환경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태도,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느낀다. 친구는 아픔과 고통을 공유함으로 걱정과 안타까움을 주는 대신, 남아 있는 시간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을 택했다.
소중한 이를 먼저 보내본 경험을 한 사람은 알 수 있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나와는 상관 없는'죽음 같은 것은 없다. 허망하고 아쉬움 뿐인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를 의미 있고 감사하며 사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친구를 떠나 보냈지만 친구의 남은 가족들과 소통하며, 주변 친구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무척 정겹다. 글쓴이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알아가는 삶을 살기를 응원한다.
https://alook.so/posts/jdt5jRo
[합평]
추억이 많을수록,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상실의 아픔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죽음은 단순히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아닌, '너 라는 우주가 내가 만든 우주에서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먼저 떠나버린 친구는 말이 없지만, 남은 사람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다짐을 하게 된다.
글쓴이는 한 때 반장도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잘했지만, 사람들을 폭넓게 사귀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며 관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본다.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이 아닌,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싶어 하는 마음을 통해 소중한 사람과 내면 깊숙히 연결된 삶을 동경하는 것을 엿볼수있다. 이러한 마음은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절실히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신체의 고통을 나누는 대신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을 선택한 친구의 모습에서,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은 결국 주어진 환경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태도,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느낀다. 친구는 아픔과 고통을 공유함으로 걱정과 안타까움을 주는 대신, 남아 있는 시간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을 택했다.
소중한 이를 먼저 보내본 경험을 한 사람은 알 수 있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나와는 상관 없는'죽음 같은 것은 없다. 허망하고 아쉬움 뿐인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를 의미 있고 감사하며 사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친구를 떠나 보냈지만 친구의 남은 가족들과 소통하며, 주변 친구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무척 정겹다. 글쓴이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알아가는 삶을 살기를 응원한다.
https://alook.so/posts/jdt5jRo
[합평]
합평이라 쓰고 감상이라 읽습니다.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불거지는 글이었어요. 첫 번째에도 그랬는데, 합평 준비로 또 한 번 읽으며, 결국 또 눈물 짓고 마네요.
문장 하나하나, 문장과 문장 사이사이, 그리움이 켜켜이 박혀있는 느낌이에요. 갑작스럽게 먼저 떠난 친구와 나눈 시간들을 글로 잘 풀어주셨기 때문에, 그저 독자임에도 쉽게 글쓴이의 사연을 공감하게 됩니다.
결핍,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를 뜻하는 말. 결국 글쓴이에게는 그 친구가 끝내 채울 수 없는 한 조각이 되겠구나. 영원한 그 친구의 결핍 속을 살아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내려 갔습니다. 우리는 아직 사십대라 사실 이별이 익숙지 않은데, 꽤 큰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아련함도 그만큼 오래 갈 테고요.
3년 전 저도 지인 한 명을 잃었어요. 희귀병이었고, 상태는 너무 빨리 나빠졌고, 뇌사로 이어지자 목숨줄이 붙어있는데 부고가 먼저 지인에게 전해지는, 너무나 생경한 장례였어요. 당시 너무 어린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저는 장례식장에도 가보지 못하고, 섬에서 혼자 슬픔을 삭여야했어요.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음을, 이렇게 급작스럽게 사람이 떠날 수 있음을, 그때 새삼 깨달았던 것 같아요. 너무 이른 죽음은 주위 사람들에게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나비를 만날 때면 의식하지 않아도 꽃망울 터지듯 친구가 떠오른다는 문구가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구슬펐어요. 그렇게 문득문득 떠올리면서, 글쓴이의 결핍이 조금이라도 채워지길 바라봅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감사히 읽었습니다.
아~~슬프다!
&
너무 부러운 그리움...
고급진 표현들...
함께한 편지에
애틋한 사랑 한조각 살짝 얹어봅니다...♡
너~~무 좋습니다~~^&^
@나철여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저 슬픈거 같아요. 슬프다가도 배는 고프고 실없는 소리에 웃는 것을 보면 사는 건 또 다 이런가 싶기도 하고요.
애틋한 사랑 고맙습니다.
@민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직 멀리 있다 여겼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요.
@피아오량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그 마음 다 받을래요!!
글에도 마음이 묻어나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똑순이
마음에 날개를 달고 보내고 싶은 곳으로 모두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따뜻한 마음 나눠주셔서 고마워요!
[합평]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린 충격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조금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로 친구 남편의 죽음을 마주하며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아멜리님의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당시 문자를 받고 공기가 바뀐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소식을 접하기 전 내 삶이 버거워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이나 그나 그녀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너라는 우주가 내가 만든 우주에서 사라진거야.
이 문장을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멜리님의 아름다운 언어로 써 내려간 이야기 속 친구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절절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 글로 조금이나마 아픔을 덜었기를 바랍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어려운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합평]
길을 걷다가 슥 지나가는 한 사람이 눈에 띌 때가 있어요. 저는 한 동안, 아니 지금도 백발이 성성한 등굽은 여성어르신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갈 때는 그 지점에서 그대로 멈춰져요. 아닌데, 아닌 줄 알면서도 엄마인양 엄마를 느끼고 싶어서요. 눈 앞에서 멀어질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이 차차 희뿌예질 때까지. 어디선가 노랑나비 한마리가 내 눈앞에 팔랑거린다면 또 그게 나를 따라온 엄마같아서 다시 내 몸과 마음은 우뚝 서서 눈을 떼지 못해요. 아, 엄마가 지금 나를 보러 온 걸까. 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구나. 그래, 이서방도 잘 있지? 평소에 했던 엄마의 말이 육성으로 들리는 착각에 아주 잠깐이라도 기꺼이 빠져보고 싶은 안타까움, 이제 겨우 일년이 넘었어요.
이게 합평인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들어가니 내 13살 삶에는 또 한 친구가 있군요.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학교를 자퇴한 건 괜찮았는데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건 서서히 통증으로 다가왔어요. 그 통증이 아마 내 안의 결핍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추억은 경험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하는데, 사춘기 정점의 기억중심에 친구가 있어요. '피아노 앞에 같이 앉아 연탄곡을'치거나 '전봇대 앞에서 다리가 아플때까지' 이야기를 나눈 장면은 아니지만, 오동나무 마른 이파리에 목마와숙녀를 빼곡하게 적어주고 내 문학의 정서를 잊을만 하면 나비처럼 날라와 응원하던 친구.
'내가 만든 우주'안에서 엄마와 친구의 우주가 지금도 멀고도 아주 가깝게 왔다가 가요. 어느날, 우리는 다시 만날테고 그때는 저도 '달려가 진하게 안아주고' 싶어요. 엄마도 친구도 기쁘게 맘껏.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너무나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 입니다.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가 너무나 보고 싶을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아프네요.
친구분은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않고 편히 계실 겁니다.
마음이 따뜻한 아멜리님~
글 쓰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읽는내내 이 글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 너무나도 멋진 글이라고 칭찬을 마구 해주면서 애정을 가득 보내고 싶어요. 글이 형태가 있다면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손을 잡으면서 온기를 전하고 싶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
[합평]
글쓴이는 결핍을 단순한 관계의 부재가 아닌,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인식한다. 여기서 수동적이며 양적인 결핍이 능동적이며 질적인 관계로 재인식된다는 인상을 받는데, 친구의 상실에 따른 결핍의 감정이 다른 이들과의 능동적 관계에 스며드는 전파 내지는 전염의 성격으로 관찰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관계라고 부르는 것들의 많은 지분이, 사실은 상실과 결핍이라는 모자라고 부족한 상태를 그보다 더 큰 애정으로 채워버린 누군가들의 그리움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에너지 보존법칙을 어긋난 것처럼 보이는 마음의 역학이지만, 실은 상실로 여긴 대상이 상실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평]
편지 형식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친구의 자리에 대한 결핍을 그려낸 글일까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서는 단순히 친구의 빈자리를 그려낸 것이 아닌, 조금 더 본질적인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그려진 느낌입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며 아멜리님의 감정이 와닿아, 마음이 아렸어요. 단지 친구 하나만을 떠나보낸 것이 아닌, 나 자신이 그리워하고 있는 그 감정. 단순히 '보고싶다'는 말로, '비어있다'는 말로만 풀어질 것이 아닌 그 감정이 먹먹하게 와 닿았습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다시 현재로. 매끄럽게 전개되는 시제의 변화가 글 속에 더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일까. 어떻게 만난 것일까. 어떻게 이별을 하게된 것일까. 읽어내려가며 계속해서 궁금증이 생겨났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며 더 깊이 글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을 감사히 읽고 갑니다.
* 이번에는 시간 부족으로 평소와는 달리 댓글로 합평을 하게 되었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