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결핍이라 쓰고 그리움이라 읽는다

아멜리
아멜리 · 하루에 하나씩 배우는 사람
2023/06/12
J에게,

내가 사는 뉴잉글랜드에 날카롭고 스산했던 바람이 물러가고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햇살이 바람에 흩날리는 봄이 찾아왔어. 영원히 동토에 살 것만 같았던 지난겨울에는 차갑고 시린 내 손발에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내 마음마저 옹졸해지는 것 같았는데, 봄 햇살에 마음이 부풀어 올라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암탉을 좇아가는 병아리처럼 따라와.

네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되어 간다. 올해 설날에는 너의 아이 D에게 책 몇 권을 우편으로 보냈어. D에게 새해 선물로 뭘 보낼까 고민하면서 내가 고를 줄 아는 선물이 책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아쉽기도 했고 한편으론 책이라도 고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어. 미국 작가가 쓴 그래픽 노블 몇 권과 국내 작가의 동화를 고르면서 D가 멋지게 한 해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멀리서 사는 이모가 D를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랐어. D에게 너의 빈자리가 너무 크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허황한 꿈은 애당초 꾸지도 않았어. 그러기엔 D에게 네 자리는 크고 넓었으니까.

그날 나는 싱가포르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덥지만, 여유 있는 토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었어. 큰아이는 남편과 함께 테니스 수업을 하러 갔고, 나는 작은 아이와 거실에서 레고로 도로를 만들어 레이싱카 놀이를 하고 있었어. 이른 아침부터 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어. 한 달 전 너의 생일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10월에 잠깐 한국에 들어가니 그때 만나자는 인사를 나눈 터라 네가 나에게 한국에 오면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던가, 요즘 핫한 곳을 미리 알려준다던가, 아이들과 같이 갈 곳을 알아냈다는 정도의 메시지일 것으로 생각하고 메시지를 열었어.

‘OOO의 배우자 ㅁㅁㅁ 께서 별세하셨기에’로 시작하는 <부고> 메시지였어. 너와 너의 남편 이름, 그리고 사이에 배치된 ‘의 배우자’를 읽고 또 읽었지만, 이 부고 메시지가 도대체 누구의 부고를 뜻하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없었어.  핸드폰을 오른손에 쥐고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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