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조금만 더 쉬웠으면 좋겠다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24

 오랜만에 고향에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고등학교 자퇴생으로서 열아홉을 함께 보냈었다. 십 대를 마감할 무렵, 나는 대학을 위해 서울로 갔고 친구는 고향에 남았다. 너는 왜 대학을 가지 않느냐고 굳이 묻지 않은 것은, 제도권 밖에서 많은 질문 공세를 받아내며 살아야했던 우리들 사이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이젠 각자 서른을 계획하고 있는 마당에 청소년기의 불문율 같은 건 희미해졌으므로, 친구에게 근 10년이 지나 이 질문을 다시 던진 건 처음엔 그저 추억 얘기나 하자는 뜻에서였다.

 그런데 이야기 하다 보니 그저 추억 얘기가 아니게 되었다. 친구는 내 질문을 고쳐 물었다. 대학을 왜 가야할까. 입시 강사로 살고 있으면서도 그 물음을 던져본지 꽤 오래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대학 가는 이유를 깨닫게 하기보다 ‘인서울’ 대학을 가기 위한 노력을 더 채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전체 대학 정원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인서울 대학을 간다고 해서 상위 10%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사실은 그 무엇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학을 대체 왜 가야하는가. 나는 어쩐지 사기꾼으로 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친구가 덧붙였다.

 근데 왜 대학을 갈 수밖에 없는지는 알겠더라.

*

 고졸 여성으로서 이십 대 초반을 살아냈던 친구의 고단함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비싼 돈을 주고 가는 대학이 가난한 내게 무슨 유용함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해달라는 친구의 당찬 물음에, 어른들은 남들이 다 가는 대학마저 안 가면서 어떻게 남들처럼 살 수 있기를 바라느냐고 응수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생각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는 친구가 못내 못마땅했을 것이다.

 언제 서울로 일자리를 구하게 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셨을 때, 나는 취기가 잔뜩 오른 채로 친구에게 벌써 어른 같은 너의 삶이 부럽다고 했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 술을 자제하던 친구의 눈길에 약간의 비릿함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그 때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내가 입에 담고 있는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35
팔로워 319
팔로잉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