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공포를 알지 못하는, 알아야만 하는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1/11/25
어릴 적 아빠는 자주 내게 오백 원짜리나 천 원짜리를 쥐어주며 소주 한 병을 사오라고 했다. 어린 아이도 돈만 있으면 술을 살 수 있는 시절이었다. 집에서 구멍가게까지는 백 미터 남짓한 거리였고 그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온통 다세대주택인 골목에서 불쑥 한 남자가 튀어나와 내 손목을 잡고 한 집의 마당으로 끌고 들어갔고 입을 맞췄다. 아홉살쯤으로 기억한다. 너무 당황한 나는 할 수 있는 한 세게 그 남자를 밀쳐내고 있는 힘껏 내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고민 끝에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위로나 신고는커녕 입단속을 시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어릴 적 집에는 친척이며 할아버지와 종교모임을 하는 분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그중 몇이 나를 유독 예뻐했고 자주 무릎에 앉으라 했다. 어른이었고 거절할 수 없었다. 팔이나 다리 따위를 만졌고 기분이 나빴다. 핑계를 대며 일어섰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고등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친척 한 분이 울면서 내게 오라 손짓을 했다. 우는 그 분을 못본 척 하지 못하고 가까이 갔고 그분은 다 큰 나를 굳이 무릎에 앉히셨다. 그리고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거야. 

성추행,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언제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스무살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는 것. 스무 살을 넘기고부터 나는 남자들에게 좀 까칠한 여자였다. 나를,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 같은 것이었다. 쉬워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고 바득바득 고집을 부리는 일도 많았다. 남자아이들은 나를 좀 까칠하고 피곤한 여자아이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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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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