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은 곧 소극적인 차별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에 대한 글.

난왜글을쓸까
난왜글을쓸까 · 돈은 없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예술가
2022/03/20
구별은 차별보다는 마일드한, 소극적인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분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차별을 하기 이전의 단계입니다.
또한, 심하지 않은 것 같지만 엄연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분을 짓는 순간 차별 받는 존재가 배제되고, '타자화'되기 때문입니다.
예시와 함께 타자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배제와 타자화
파티장에 흑인이 한명 있었습니다. 파티 이후에 이야기하다가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묘사를 하는데, '흑인'이라고 말했다면 한번에 누군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 파티에 온 '흑인'은 그 사람 하나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까만 중절모를 쓴, 키가 180이 넘고 호리호리한 사람,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서 그 사람을 특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타자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편견이 존재합니다. 
"아~ 파티에 왔던 그 '흑인'!"
이렇게 말하는 순간, 단순히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흑인'에 딸려오는 편견을 담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사회문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편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갖고 차별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을 바라볼 때 인종, 성별, 장애 여부 등으로 꼬리표를 달지 않아야 합니다.

꼬리표를 붙여서 그 사람을 부르는 순간, 
'우리'라는 정상그룹과 '그들'이라는 타자화된 그룹으로 나뉘며, 
'그들'이 우리와는 굉장히 다른 존재라고 착각하게 되며 편견을 갖게되니까요.


구별은 차별을 위한 초석이다.
겉으로 봐서는 유태인이 다른 백인들과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치는 유태인에게 '유대인'이라고 쓰인 노란 별을 달게 했습니다.

차별을 하기 위해 구분한 것입니다.
우리 '정상'적인 백인들은 너희 유대인과 다르다며 타자화시키고 차별을 정당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겉모습만 봐서는 별 차이가 없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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