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뷰] 콜센터를 나와 연고도 없는 곳에 독립서점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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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alookso 에디터가 얼룩커 여러분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얼터뷰(alter-view)'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생각 아미 얼룩커님의 신청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쉰두살 김희정 씨는 생각의 주인의 주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 관악구에서 독립서점 '생각의 주인'을 운영한다. 카페도 겸하고 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휴무는 한 달에 한 번, 아르바이트 없이 혼자서 일한다. 보통은 새벽 5시 반에 일어난다. 가게 바로 앞에 살아서 서두를 필요가 없는데도 그냥 저절로 눈이 떠진다. 부지런히 청소하고 오픈 준비를 하지만 8시부터 손님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가끔 "일찍 여시네요" 인사 건네며 들어오는 손님이 있다. 그럴 땐 기분이 좋아져 신나게 원두를 내린다.

낮 동안엔 손님이 거의 없지만, 다행히 희정 씨는 긴 시간을 혼자 보내는 데 능숙하다. 서점 홍보를 위해 연 SNS에 신간 소식을 올리기도 하고, 문득문득 드는 생각들도 끄적인다. 책 읽고 그림 그리며 시간을 보내다 나른해지면 유튜브를 켠다. 왠지 모르게 각종 부업 정보를 알려주는 영상들에 눈이 가서 한참을 본다. 그렇게 낮이라고도, 저녁이라고도 하기 애매한 시간이 된다. 그제야 단골 손님이 커피를 마시러 들어오면 희정 씨는 다시 신나게 원두를 내린다.
서울 관악구에서 독립서점 '생각의 주인'을 운영하는 김희정 씨(생각아미 얼룩커)

희정 씨가 서점을 연 건 올해 1월1일, 이제 거의 1년이 되어간다.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타고난 책벌레를 상상한다. 어릴 때부터 책에 파묻혀 자라나, 평생을 책 읽고 사색하며 살아온, 책에 둘러싸인 환경이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

여기에 희정 씨의 경우가 꼭 맞는 건 아니다. 희정 씨 표현을 빌리자면, "누가 '이거 해봤어요?'라고 물었을 때 웬만하면 '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먹고 살기 위해 별별 일을 다 해봤다.

결혼한 뒤로는 남편 고향인 춘천에서 지냈는데, 집 바로 옆에 있는 오이 농장에서 아들 둘이 하교할 때까지 일했다. 시내로 나가면 일자리가 더 많았다. 옷, 신발, 화장품, 액세서리, 스포츠 용품, 닭갈비, 짜장면…웬만한 건 다 팔아봤고, 서점을 열기 바로 전엔 5~6년 정도 콜센터에서 고객 상담을 했다. 새삼 돌이켜보니, 쉰둘이 되기까지 십수년 세월 동안 일을 쉬어본 건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는 듯하다. 그나마도 마음이 불안해 틈틈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다.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수레에 가득 싣고 집집마다 꽂아 넣던 일도 했는데, 집도 적은 시골이라 뙤약볕 아래를 한참 걸어야 했다. 뺨이 벌겋게 익어가도 희정 씨에게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확실히 희정 씨는 책벌레는 아니었다. 그저 "그 때 가능했던 취미와 관심사"를 품고 살았다.
희정 씨가 직접 그려 서점 벽에 걸어둔 그림. '두근거림'. 희정 씨가 적어둔 작품 설명을 옮긴다. '봄의 새싹 같은 젊은 청춘에게서 생각이 통하여 두근거림을 느꼈으나, 흰머리가 듬성듬성 자라난 내 자신의 현실에 안타까움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렇지만 막연히 책이 좋았다.

춘천 명동 시내 한복판에 '청구서적'이라는 대형서점이 있었다. 춘천 사람들이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청구서적 앞에서 보자'고 말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희정 씨는 그곳 냄새를 정말 좋아했다.

어느 날엔 20대 경리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30대 중반의 희정 씨는 무작정 서점을 찾았다.

 "너무 서점에서 일해보고 싶은 거예요.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었지만 책 뒤적이고…그런 건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무작정 찾아가서 이력서 냈어요. 사장님한테 나 책 향기가 너무 좋아요, 여기 아니면 갈 곳 없어요, 아니면 식당 간다고, 그냥 다짜고짜." 

결국 희정 씨는 2층 전문서적 판매 코너에 일자리를 얻었다. 2006년 경영난으로 폐업할 때까지 함께 일했다. 마지막엔 팔리지 않아 내다버린 책들만 트럭 5~6대분이 나오고 재고로 쌓여 있는 책만 2억원을 웃도는 상황이었다. 청구서적의 사장은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책 사는 시대라지만 서점만의 재미가 분명 있다'(관련 기사)고 믿으며, '청구에 책이 없어 서울로 가야겠다는 얘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관련 기사) 서점에 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4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오던 서점이 사라졌다.

하지만 함께 '푸른 언덕'(靑丘)을 돌본 기억은, 희정 씨 맘에 오래간 남았다.

희정 씨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서점 곳곳에 놓여 있다.

그렇게 희정 씨와 책과의 인연이 끊기나 했는데, 거짓말 같이 다시 이어졌다. 인생이 얄궂게도, 행복의 순간이 아닌 절망의 순간에.

약속한 것처럼 모든 위기가 맞물려 몰린 시기가 있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작은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던 때 희정 씨는 이혼을 했다. 그 즈음 보험설계사로 취직했는데, 희정 씨에겐 "남을 생각하면 돈을 못 버는 일"로 여겨졌다. 차 없는 '뚜벅이'로선 반나절을 꼬박 돌아다녀봤자 만날 수 있는 고객은 한두 명뿐이었다.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는 더 드물어서 주머니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 퇴근한 뒤 저녁에도 식당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그저 내려놓으려고 생각하던 때"였다. "집에 있기는 힘들었고 어디서든 시간을 때워야 했는데, 서점밖에는 갈 곳이 없었다." 서점에 간 희정 씨는 그냥 잡히는 책은 모조리 읽었다. 주로 인문도서 코너에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여러 책을 읽어도 하는 말들은 모두 한 곳으로 모이는 듯했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라.

주인, 주인, 주인… 희정 씨는 계속 곱씹었다. 주인이 된다는 게 뭐지?

 "책 속에 책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한 책이 다른 책을 인용하잖아요. 그러면 또 그 책을 보고 싶어져요. 그래서 찾아서 보고 또 보고, 이런 일들이 계속… 근데 다들 하는 얘기가, '주체'가 되라는 거예요. 제가 원래 남편하고 살 때는 주눅들어 있었거든요. 남편이랑 나이 차이도 좀 있던 터라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나보였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며 생각을 하다 보니 제가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저 일할 때도 다들 잘한다면서 계속 일하라고 꼬셨거든요? 학창시절에도 친구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줬고요. 아 나는 빛이 나는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왜 움츠러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생각의 주인' 내부 모습. 인테리어를 꾸미고 벽화를 그리는 것 모두 희정 씨가 했다.

희정 씨가 '인생 책'으로 꼽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최진석, 21세기북스)은 철학의 자세 중 하나로 '독립'을 제시하며 이렇게 정의한다. 독립은 '익숙한 나로부터 벗어나기'.

두 아들이 제대하고 나자 희정 씨는 "엄마도 엄마 인생 살게!" 선언하고 오래 살던 춘천을 떠났다. 이후로 몇 년 동안 스스로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고, 잘 아는 것이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책'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고, 그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일. 그 때부터 독립서점을 꿈꿨다.

2018년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도 한 몫을 했다. '얌마 니 꿈은 뭐니!' 청소년에게 외치는 가사라는데 오십이 다 된 희정 씨 맘에 콕콕 박혔다.

콜센터를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서점을 차릴 건물을 알아봤다. 다들 월세가 비싸거나, 적당한 면적이 아니거나, 이미 근방에 독립서점이 있는 등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 낙성대역 근처에서 지금 건물을 찾게 됐다. 언덕을 올라야 하지만 대로변에 있지 않아 조용한 데다 월세도 쌌다. 금방 없어질까 두려워 부랴부랴 대출을 받아 계약을 맺고 회사를 나왔다. 2020년 12월이었다. 주위에선 다들 코로나 시국이라며 만류했지만 희정 씨 맘은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희정 씨가 블로그에 쓰던 일기엔 이런 고민들이 담겨 있다.

<독립서점을 개업하다!> (2021.1.3)
"더 나이 들기 전에, 더 아프기 전에, 더 힘들기 전에…그리고 죽기 전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해보고 싶은 건 해보고 죽어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새해에는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은 내 자신이 만나 남은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잘할 수 있다!~^^"

<서점 창업기2> (2021.1.9)
"혼자서 모든 것들을 해야 하는데, 도움이 되어줄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기에 때때로 조용히 울기도 했다. 혹여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이 시기에 꼭 해야겠냐, 잘 되겠냐 하는 걱정만 늘어놓기 일쑤여서 내게 도움이 안 됐다." "(책을 보면) 어차피 영웅은 고독하다. 주변 시선과 걱정을 생각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서점이 바쁘지 않을 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희정 씨는 '생각의 주인의 주인'이 되기 위해 '올인'했다. 모든 걸 혼자 준비해서 서점을 차렸고, 차비를 아낄 겸 집도 아예 근처로 옮겼다. 인테리어를 꾸미고, 커피를 내리고, 예상 비용과 매출을 계산하고… 이전의 수많은 일터에서 익혔던 업무가 신기하게도 활용할 곳이 다 있었다.

희정 씨가 꿈꾸는 건 '시니어를 위한 아지트'. 전자책보단 종이책이 익숙하고, 트렌디한 신진 작가는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학창 시절 읽었던 고전은 다시 꺼내 읽고파 하는 시니어들이 주눅들지 않고 서점에 드나들기를 원한다. 책을 선별하거나 가게를 꾸밀 때도 늘 이 점을 생각한다. 단골 손님도 하나둘 생겨났다. 대부분 퇴직하거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상대를 찾는 시니어들이다. 함께 모여 독서모임도 진행하는데, 책 얘기보단 사는 얘기를 더 많이 나누느라 페이지 한 장 넘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만 계속되는 적자는 고민이다. 서점 입간판을 걸고 있지만 한 달에 책은 15권 정도 나갈 뿐이다. 주된 수입은 카페에서 채우지만 주택가라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다. 월세를 내고 대출 이자를 갚기에도 빠듯해서 퇴직금을 조금씩 빼내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지인들은 '홍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주 고객층인 시니어들은 인스타그램도 블로그도 잘 하지 않으니 어떤 방법이 좋을지 감을 잡기도 어렵다.

그래도 희정 씨는 서점을 연 뒤 지난 1년이 "그저 행복"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사람이 여행을 하면 자기 돈을 쓰면서도 행복하잖아요. 저도 매일 돈을 벌며 행복한 건 아닐지라도 지금 너무 행복해요.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말 안 들어요. 왜냐면 전 원래 일어나 있지도 않았거든요."
출입구 옆 큰 유리창에 방탄소년단 '소우주'의 가사 일부가 적혀 있다. 희정 씨는 달마다 다른 노래를 적어둔다.

희정 씨는 서점 큰 유리창에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노래 가사를 적어둔다. 지난달엔 'Answer : Love Myself'를, 이번 달엔 '소우주'의 구절을 택했다. 두 노래 가사를 합치면, "차가운 밤의 시선 초라한 날 감추려 몹시 뒤척이던" 어둠을 지나,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을 발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다들 어려운 이야기 많이 하시는데 저는 그런 것 할 줄 몰라서 어쩌죠"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온 몸으로 세상을 부딪치며 배운 이야기, '꿈을 가져라' 같은 뻔한 말이 가닿을 수 있는 끝까지 머뭇거리지 않았던 이야기…

'콜센터에서 일하던 50대 여성이 직장도 그만두고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서 독립서점을 차렸다.'

누군가에겐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희정 씨 삶은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궤적을 기울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먹고 살기 위해 이곳저곳 뛰면서도 '책 향기'를 좋아하던 시절을 거쳐, 한 동네 터줏대감 같던 서점의 끝을 함께 하고, 좌절에 부딪치면서도 희정 씨는 대피처로 서점을 떠올려왔다. 달리다 넘어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순간에도 펼쳐지는 길이 있었다. 그러니 희정 씨가 52살의 나이에 독립서점을 차린 건 충동적인 결정도 아니고, 철없는 치기도 아니고, 세상 물정 모르는 한가함도 아니다. 그는 그저 삶에서 꿈을 꿀 뿐이다.


 by 박윤경 에디터

🔖 에필로그
김희정 씨(a.k.a. 생각아미 얼룩커님)가 프로젝트 alookso에 직접 그려준 선물. alookso 사무실 한가운데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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