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친구가 없던 아이

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06/16
전학 가기 싫어-

몇몇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로 가득 메워졌을 놀이터였다. 그럼에도 친구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내 이름을 부르던 첫날의 그 목소리가 울음으로 물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와 함께 오래된 놀이터의 정자에 나란히 앉아 있다. 연신 눈가를 비비는 친구의 얼굴이 빨갛다. 한 손으로는 친구의 손을 꼭 잡은 채, 발 아래 조각난 보도블록을 딸깍거린다. 발끝으로 모서리를 누를 때마다 달그락거리며 제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블록,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 너 보고싶어서 어떻게 해- 봄이었다. 반이 갈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친구의 전학과 이사 소식이 전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친구는 자주 울었다. 그날도 친구의 울음이 길게 이어졌다.

첫 만남에서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을 던진 친구는 상기된 목소리로 눈을 반짝였다. 우리 같은 동네였네! 교실 한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내게 먼저 다가온 친구는 그날 이후부터 언제나 먼저 내 손을 먼저 잡아 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소꿉친구조차 없던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단짝친구였다. 다른 아이들의 세상 속으로 친구의 손에 이끌려 들어선다. 조용한 아이라는 명칭 뒤에 숨어있던 활발함이 조금씩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보다 더 친한 친구 만들면 안 돼- 작은 질투를 하던 친구는 언제나 내 손을 힘있게 꼭 쥐곤 했었다.

초인종이 울리며 읽던 책을 덮는다. 같이 놀자며 찾아온 친구의 손에 이끌려 밖을 나선다. 책이 그렇게 좋아? 가끔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삐지던 친구를 달래기도 하며, 1년이란 시간동안 서로의 자리가 견고해져 갔다. 늘 웃던 그 친구가 운다. 이제 너랑 못 만나잖아- 흐느낌 속에서 전해지는 말을 되돌려준다. 나도 너랑 더 못 만나는게 싫어- 내 말에 친구의 울음은 웃음기가 섞인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우리 그래도 계속 친구인거지? 
응- 당연하지. 

친구의 목소리도, 울음 소리도 줄어든다. 모든 소리가 희미해지는 것 같은 감각이 찾아온다. 그늘 너머의 햇빛이 모든 소리들을 묻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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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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