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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 댄서들을 통해 바라본 경쟁을 사유하는 우리의 태도: 당신은 어떤 경쟁을 하고 싶으신가요?


최근 엠넷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를 열심히 시청하는 중입니다. 
스우파 댄서분들의 멋짐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주고 있죠. 

저 같은 경우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고단함에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스우파 댄서분들의 선택과 언행을 보며 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약자, 경쟁, 성장 등을 정의하는 방식이 비전형적이기 때문인데요.

제가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스우파 방송 속 3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스우파 방송 속 3가지 특징
 
1. 쉬이 상정되지 않는 약자
저는 사회에서의 약자가 계층, 나이, 소득 등의 지표적 개념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속 약자는 각자가 속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합니다. 상황과 기회, 그리고 '약자'를 사유하고 상정하는 사람에 따라 '약자'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공동체 또는 과반수의 목표, 이익, 성질에 반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죠. 
(여담이지만 이직을 할 때 케바케, 사바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거고요...) 

스우파는 댄서들로 이뤄진 작은 사회입니다. 그리고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사회의 특성상 누군가는 '약자'가 되고, 무대를 떠나야만 합니다. 모두가 간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 불가피한 경쟁이 야기되는 상황이 에피소드마다 연출됩니다.

여기서 방송국이 의도한 바는 댄서들이 룰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을 겁니다. 전형적인 파이터 기질, 룰브레이커 기질을 보이며 자신을 위해, 팀을 위해, 프로그램 때문에(판이 그렇게 짜여 있으니) 누군가를 더 교묘하게 매도하고 폄하하며 전략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길 기대했을 거예요. 특히 '약자 지목 배틀'의 경우 기싸움과 기선제압이 중요한 만큼, 팀별로 충분히 고려된 전술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댄서들은 최초의 약자 지목 배틀부터 쉬이 연상되는 '약자'의 정의를 거부합니다. 나보다 못하는 사람을 골라서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려 한다거나, 초반부터 멋있어 보인다를 목표로 한 듯한 댄서는 없어 보였어요.

'댄서로서의 호기심', '댄서로서의 감정선', '댄서로서의 도전정신' 등 오직 춤으로부터 비롯된 이유로 배틀이 성사됩니다. 남보다 내가 잘 춰서가 아니라, 내가 잘 추기 때문에 배틀에 나오는 댄서들의 모습이 계속 비춰졌죠.

또한 이들은 무대에서 '댄서로서' 멋져 '보이고' 싶은 감정이 앞서 춤을 추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댄서들은 상대적인 상황 (내가 더/덜 인기 있는 팀이니까, 내가 더 경력이 많으니까)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춤에 의해, 춤을 위해, 춤 때문에 경쟁에 참여했죠. 심지어 경쟁하는 과정에서 서로 춤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그간 쌓여왔던 감정을 내려놓고 화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경쟁을 '기 싸움'으로 요약하기엔 오히려 개개인의 정치가 소멸한 상태였습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성상 댄서들의 몰입이 필수적이었고, 일반적인 공식대로라면 공공의 적 또는 위계를 바탕으로 한 약자가 상정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방송국의 약자 상정 계산은 어긋나버리고 맙니다. 왜냐고요? 경쟁에 참여하는 댄서들의 의지, 신념, 선택, 행동 때문이죠!


2. '춤'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재정의된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정체성
멋진 댄서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한 스우파에서 댄서들은 엠넷이 상정한 '멋진'을 포기하는듯 합니다.
오히려 이들은 프로그램 시작 전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댄서'라는 정체성에 더욱 몰입하죠. 

이에 '멋진' 댄서가 따로 있는 거라기보단, '댄서'라면 모두 귀하고, 멋있다는 정의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춤을 잘 추기 위해, 각자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하는 선택이라면 오해될 수 있는 지점도 결국엔 멋진 결정으로서 존중받습니다. 원트의 리더 효진초이가 메가 크루 미션에서 아이돌인 채연이 춤으로만 승부할 수 있도록 다른 아이돌을 초빙한 경우죠. 처음엔 비판받았으나, 이후 상황을 안 댄서들이 효진초이의 노력을 존중하는 모습이 방송에 비춰졌습니다.
 
즉, 스우파 사회 구성원의 적이 '댄서'로 통일되면서, 자연스레 '사회적 신뢰(social trust)'도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자가 댄서로서 맞서 싸워온 편견, 어려움의 경중을 서로 재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과 다른, 반대되는, 또는 비슷한 성향의 댄서를 이김으로써 댄서 인생 속 고단함을 보상받길 희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함께 춤추고, 과정 속 자신의 기량을 닦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거죠.

결론적으로 댄서들은 스우파 프로그램의 참가자로서 방송국에서 정해놓은 세계관에 반쯤 속해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댄서'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정체성은 프로그램의 체제에 완벽히 동화되거나, 또는 이에 맞서 반항하지 않고서도 체제를 횡단하고 전복시킵니다. 
(예:  프라우드먼의 제시 대전 퍼포먼스에서 모니카가 복면을 쓴 이유가 엠넷에 반항하기 위해서가 아닌, "'안무 시안'이기에 '프라우드먼의 퍼포먼스가 더 눈에 띄게끔 하기 위함"이라고 한 바와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프라우드먼 퍼포먼스 관련 댓글 캡처본


3. 각자, 알아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성장한다
유독 올해 도쿄올림픽의 결과 관련해서 개개인의 성장 척도가 많이 거론되었습니다. '어떤 결과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면 된다'라는 주장을 표한 선수들, 그리고 그 선수들의 의견에 격한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죠.

스우파의 댄서들 또한 스우파 프로그램 속 매 순간의 기회를 자신, 그리고 자신의 팀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론이 나오건 자신의 춤 실력이 향상하고, 그 외 춤을 추는 데 있어 배울 점이 있다면 승복하고 받아들이죠.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그 또한 춤으로 승화시키며 최선을 다합니다.

스우파 사회 속 모든 미션, 배틀, 저지의 평가, 조회 수, 좋아요 수 등등 경쟁의 계기들은 남과 나를 견주어 평가받는 무언가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존중하기에 타인도 존중할 수 있고, 조급함과 압박감이 큰 상황 속에서도 나름 일관된 선택(타인을 약자로 치부하거나 무시하는)을 할 수 있는 거겠죠. 

물론 스우파는 상대 댄서에 대한 대한 비판이 아예 배제된 무한긍정의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팀원에 대한, 다른 팀에 대한 감정의 굴곡이 분명 보여지죠. 하지만 댄서들의 갈등은 대부분 춤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됩니다. 그 외 문제일 경우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비판합니다. 

무엇보다 댄서들은 자신이 느낀 감정을 춤으로 승화하고, 타인의 감정 또한 승화될 수 있는 귀한 감정으로 여기는 듯 했어요. 나의 것만큼 남의 것도 소중하기에, 남의 것만큼 나의 것도 소중하기에 스우파 댄서들이 자신의 춤 세계에 더욱더 몰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한 엠넷의 의도를 넘어 댄서들의 감정과 태도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기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출연하신 댄서분들의 소신이 뚜렷했다는 방증이겠죠. 시청자들이 이들을 진정한 댄서, 파이터, 멋진 언니로 존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는 모두 타인이 나에게 느끼는 열등감, 내가 타인에게 느끼는 시기심, 기회를 뺏기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 등등에 종종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저부터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조급함과 불안감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기도 하면서 일상을 보내왔어요. 

저는 스우파를 보면서 한국에 사는 청춘 모두가 지쳐버린 과열된 경쟁, 그리고 경쟁과 결부된 키워드들의 또 다른 의미를 모색해봐야겠단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를 위해, 그리고 제 주변을 위해 경쟁에 대한 저만의 해석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때론 강자이기도 하고 약자이기도 한 제가 앞으로 조금 더 떳떳한 경쟁을 펼쳐나가는 날들을 기대하면서요.



긴 글을 읽어주신 다른 분들께도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경쟁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경쟁을 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