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픽
얼룩커 픽

저는 남들이 저보다 못 살기를 원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덜 불행해지기 위해 조급해 하는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의 가족과 한 집에서 잘 살고 있고 어머니 명의의 집(빌라)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한 친구는 자기만 아파트가 없다고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대한민국 아파트 수와 인구 수를 비교해봤을 때 '나만 아파트가 없다'는 건 터무니 없는 사실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는 그것이 사실입니다. 다 있고 나만 없어.
 직장 동료 중 누가 청약에 당첨 된 것이 기뻐할 일이 아니라 배아픈 일이 되고, 또 친구 누가 산 아파트가 2년 만에 몇 억이 올랐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칩니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친구의 친구가 몇 십억을 물려 받았다는 말에 세상이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조금만 둘러봐도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은 한순간에 '없는 사람'이 됩니다. "야 너보다 힘들고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말을 해봤자, 그런 사람들(?)은 우리의 시야권 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나 봅니다. 나보다 운이 좋고 가진 게 많은 사람들, 그래서 어떻게든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만이 나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위치(?)의 자신을 발견하는 데서 기쁨과 안도를 느낍니다. 그렇지 못한 데서 불안과 위기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를 통한 자극이 여타의 다른 것들보다 월등이 높아서 점차 강박적이 되어갑니다. 겨우 30분 전에 본 코인이나 주식을 참지 못하고 또 들여다 보듯, 매일매일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탐색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한정된 수명에 비추어 봤을 때, 대단한 인생의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남들 사는 모습에 반응하고 오기를 가진다고 '행복의 능률'이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재산의 능률'은 오를 수 있습니다만) 오히려 마음이 더 피폐해지고, 때때로 그러한 마음의 피폐함이 곧 그 사람이 되는 경우도 목격하게 됩니다. "어디서 없는 것들이!!" "나는 너따위와 수준이 달라!" 이런 말을 당당히 뱉을 정도로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점차 그렇게 되어 갑니다. 실제로 남들 주식이 다 떨어졌을 때 조금 덜 떨어진 나의 주식이 흐뭇하고, 코인이 곤두박질 쳤다는 소식에 코인에 들어갈 타이밍을 놓친 자신을 위로합니다. 왜 이런 식일까 생각해보면, 담배나 술처럼 대단히 자극적인 종류의 기쁨입니다. 좋은 음악 한 곡을 들었을 때의 기쁨이 찰랑이다가도, 이번에 오른 우리 아파트값 검색 한 번 해보면 음악의 여운 따위는 300년 전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립니다.
 저의 고민은 이것입니다. 저는(그리고 우리 모두) 분명 한 때는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새카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마을 곳곳 유리창이 빛나면 저 한 집 한 집 모두가 행복하고 따뜻한 오늘을 보내길 나도 모르게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행복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사람은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줄 때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그건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갖고 태어난 놀라운 능력이자 선물이며 또한 무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점점 그 능력을 잃어갑니다. '타인의 행복을 바람으로써 느껴지는 행복'은 무료이기 때문에 천시당하고 있지만, 만약 그 능력에 가격을 매긴다면 엄청난 금액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