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디어시장 탐구생활(1): 기사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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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기자를 업으로 삼아 10년 넘게 일해온 저에겐 여러모로 아프고 무섭고 슬픈 멸칭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한국 언론과 기자들에게 품고 있는 불만이 저 단어 하나에 축약되어 있단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파하고 무서워하고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기자(이제는 에디터?)라는 직업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저라는 기자를 좋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욕을 덜 먹고 좀 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지점들을 간편하게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이 연재는 프로젝트 alookso의 고민과 맞닿아있지만, 제 사견이 담긴 포스팅이므로 alookso 전체의 의견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기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저는 기자를 "정보를 수집하고 그 가치를 판단하며 이를 가공하는 직업"이라고 정의합니다. (유통은, 신문이나 방송, 플랫폼 등 통상 기업의 영역이니 배제했습니다).
엄밀한 학문적 정의는 당연히 아닙니다. 직업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 저 나름의 의견일 따름이죠. 이렇게 정의하면 생기는 문제 하나. 정보를 수집하고 가치를 판단해 가공하는 다른 직업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국정원 정보요원들이나 기업을 위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이터 과학자들 역시 기능적으로 보면 정보를 수집, 판단, 가공하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기자는 그저 정보를 다루는 직업일까요. 저는 여기서 기자라는 직업을, 기자가 다루는 정보의 종류로 구분해 볼까 합니다. 즉, 기자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 판단, 가공하는 직업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란 결국 시민 개개인이 주권을 행사하는 정치체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민 개개인이 제대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즉 좋은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 무엇보다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자는 사회 곳곳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정보 중에,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시민들의 판단을 돕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들을 수집해 가공해서 전달해주는 거죠. 대부분 사기업에 불과한 언론에 여러 특권과 권위, 그리고 책임까지 부여된 이유 역시 이런 역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기자들은 정말로 시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시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게 지금 한국의 현실 같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12년 동안 제가 언론업계에 종사하면서 경험으로 느낀 일종의 '사회 분위기'가 그렇단 뜻입니다.
시민들이 이렇게 생각하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저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언론사들이 너무나 많은 기사를 쏟아내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기사화할 가치가 없다고 했을 정보들도 이제는 마구 기사화가 되어서 우리 눈에 보입니다. 물론 묻혀 있던 귀한 정보를 발굴해주는 좋은 기사도 있겠지만, 다수는 "이런 게 기사거리냐"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다들 그 이유에 대해서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계실겁니다. 저는 여기서 그 짐작에 대해 기초적인 정보경제학 이론을 빌려서 간단히 배경 설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하기 위한 참고 설명 정도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사는 무엇인가

제가 앞서 말했지만, 기사는 결국 기자가 수집해 기사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정보를 적당한 형태(신문이라면 텍스트와 사진, 방송이라면 음성과 영상 등)로 가공한 것입니다. 경제학 용어로 하면 정보재라고 합니다.
이 정보재의 특성, 특히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정보재가 가지게 된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가 바로 복제비용이 제로라는 점입니다. 경제학 용어로는 정보재의 한계생산비용이 제로에 수렴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칼 샤피로와 할 베리언이 공저한 정보경제학의 고전 '정보법칙을 알면 .COM이 보인다'(원제: Information Rules)에는 이 문제를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정보재의 근본 특징의 하나는 생산비가 “최초 카피 비용”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한 서적의 최초 사본이 인쇄되면 다른 사본의 인쇄비는 단지 몇 달러에 불과하다. 시디를 추가로 찍어내는 비용은 1달러에 못미치며, 8천만 달러가 투입된 영화의 제작비 대부분은 원본 프린트 생산에 쏟은 비용이다. 게다가 정보 기술의 진전으로 정보 유통비의 하락세가 가속화되어 최초 카피 비용은 과거에 비해 총원가의 보다 많은 비중을 포함하게 되었다. ...디지털 형태로 네트워크에 운반되는 정보는 최초 카피 문제를 극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즉, 정보의 최초 카피가 일단 만들어지면 추가 사본 비용은 사실상 제로이다. 정보는 생산에 큰 비용이 들지만 복제 비용은 저렴하다.

정보 생산에는 큰 비용이 들지만, 복제 비용은 저렴하다. 이 한 줄이야말로 모든 언론사가 마주한 딜레마의 본질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정보재로는 돈을 못 번다고?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샤피로와 베리언이 언급한 것처럼 영화나 음악 등 이른바 오락용 정보재(대개 콘텐츠라고 합니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영화나 음악은 약간의 기술만 알면 누구나 공짜로 복제해서 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소위 '어둠의 경로'라고 하는 파일공유 사이트나 2000년대 초반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냅스터나 소리바다같은 서비스가 이 문제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죠.
어둠의 경로나 냅스터를 가만히 놔두면 영화나 음악같은 콘텐츠를 시장에서 돈 받고 유통시키기 매우 어렵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도 영화나 음악을 만들려 하지 않겠죠. 시장이 붕괴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저작권법을 통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해줍니다. 공급자의 이익 마진을 정부가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거죠.

기사의 저작권은?

기자들이 생산하는 기사 역시 정보재이지만, 문제는 기사의 저작권을 따지기 어렵단 점입니다. 예컨대 어떤 정치인의 비리 의혹 정보에 저작권을 따질 수 있을까요? 대선 후보의 공약에 대한 정보나 정부의 각종 복지정책에 대한 정보, 또는 코로나 1일 확진자 숫자 같은 정보는요?
이 문제는 앞서 제가 나름대로 내린 "기자는 시민들의 의사결정을 돕는 정보를 수집, 판단, 가공하는 사람"이라는 정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기자들이 생산하는 기사는 공공에서 자유롭게 접근가능해야 그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소수의 시민이 정보를 독점하고 판단을 내린다면, 그게 바로 독재 정권이겠죠.
자, 여기서 언론업계가 마주치는 본질적 딜레마가 등장합니다. 최초의 기사를 작성하는데는 상당한 비용이 듭니다. 기자 개인이 취재와 기사 쓰기 등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죠. 어떤 특종은 아주 오랜 시간 취재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 역시 다른 정보재와 똑같이 복제비용이 제로입니다.(한 언론사의 특종도 다른 언론사가 사실 확인을 거쳐 받아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30분도 안 걸립니다) 게다가 저작권법으로 보호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사는 뭘로 돈을 벌어서 기자들에게 월급을 주나요?

언론사의 비지니즈 모델은 광고플랫폼

지금은 플랫폼 기업들이 대세가 된 시대입니다만, 사실 언론사 역시 핵심 비지니스 모델은 플랫폼입니다. 더 정확히는 광고 플랫폼이죠. 따지고 보면 언론사의 비지니스 모델은 본질적으로 네이버나 구글 같은 검색 포털사이트와 비슷한 모델입니다.
언론사는 기사를 거의 공짜에 가깝게 독자들에게 제공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물론이고 인터넷 언론사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죠. 구글이나 네이버가 공짜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사가 생산하는 핵심적인 정보재를 무료로 뿌리는 대신에, 언론사들(과 포털)은 독자들의 관심을 모읍니다. 그리고 그 관심을 광고주들에게 팝니다.
이렇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찾으려고 신문을 펴들고 TV를 켰다가 마주치게 되는게 뭐죠? 바로 광고입니다. 광고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건 바로 사람들이 그 광고를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작로 한 복판에 대형 광고판을 세우고, 신장개업한 가게는 요란한 풍선인형을 놔두고 시끄럽게 홍보를 하는거죠.
언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정보를 공짜로 제공한 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관심을 광고주들에게 비싼 값에 파는 겁니다. 신문사가 부수에 목을 매고, 방송사가 시청률에 사활을 거는 것도 부수와 시청률이 광고주들에겐 그 광고 플랫폼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죠.

특종의 경제학

이 대목에서 잠깐 옛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신문사에 다닐 때, 선배들 '라떼' 얘길 들어보면 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엔 특종 보도의 가치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신문 1면에 제대로 된 특종 기사가 나가면 그날 신문의 판매 부수 단위가 바뀔 정도였단 얘기도 들었습니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조간신문이 나가면, 이후 저녁에 석간 신문이 발행되고 저녁 시간에 방송 뉴스가 나가기 전까지는 별다른 언론 보도를 접할 경로가 없었습니다. 즉, 조간 1면에 대특종이 나가면 그 신문사는 그날 하루 내내 독자들의 관심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특종을 많이 하는 회사에 독자가 몰릴 것이니, 그 회사는 자연스럽게 광고플랫폼의 가치가 커지게 되고요.
지금도 신문과 방송같은 소위 레거시 미디어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특종 경쟁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남아있습니다. 저는 최순실 사태나 조국 사태 같은 대형 의제가 터졌을(?) 때 결정적인 사실을 발굴했던 대부분이 레거시 미디어 기자들이었단 것 역시 이런 문화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인터넷 시대가 언론에 가한 타격

정보경제학의 논리로 보면, 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특종의 복제비용은 제로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하루 반나절 정도의 시간 동안 정보를 독점적으로 유통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포털이 등장하고 모바일 기기가 대세가 되면서 그야말로 모든 언론사가 YTN화 되었습니다. 24시간 뉴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된거죠.
그에 따라 특종의 복제비용도 제로가 되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한 언론사가 특종을 하면 관련 사실을 확인해서 따라잡는 보도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0분도 안 걸립니다. 심한 경우엔 확인도 안 하고 그냥 해당 언론사를 인용하는 식으로(00일보에 따르면 ~~라고 보도했다,는 식입니다), 기사를 내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즉, 이제 언론사들은 특종 보도를 통한 질적 경쟁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황이 되고 만 겁니다. 예전처럼 큰 특종 보도를 해서 누리는 우위가 사라졌습니다. 여기에다가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지배적인 기사 유통 경로가 된 것도 개별 언론사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독자들은 특정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보기보다는 그냥 포털에 접속해 뉴스를 클릭하면 됩니다. 거기에 모든 뉴스가 다 있으니까요. 예전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보수지 하나, 진보지 하나 구독하던 시민들도 꽤 있었습니다. 이젠 그냥 네이버에 들어가서 원하는대로 찾아서 보면 됩니다. 개별 언론기업들 대부분은 이제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를 거의 상실한 상태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언론의 생존전략 전환

자, 이렇게 개별 언론사들 간에 질적 경쟁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질이 무의미하다면 결국 양으로 경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사 하나로 불러올 수 있는 독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었으니, 이제 예전처럼 독자의 관심을 모으려면 무조건 많이 쓰는게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 되어버린 겁니다.
소위 '어뷰징' 기사 역시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뷰징 기사가 생산되는 원인을 독자 탓으로 돌리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어뷰징 기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기사를 생산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수요와 달리, 어떻게든 많은 기사를 쏟아내서 독자들의 관심을 가져와야 하는 언론 시장 내부의 경제 논리 역시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사가 너무 많다

기레기,라는 멸칭의 문제는 현재 언론 상황에 대한 많은 문제의식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나 언론사의 역량, 편향성이나 신뢰성 등등. 그 중에 '어뷰징' 기사로 대변되는 문제, 즉 기사가 너무 많이 쏟아지는 것 자체로 인해 공론장이 좋은 정보보단 소음으로 가득해지고, 그 때문에 언론 자체의 신뢰성도 점점 마모되는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한국 미디어 환경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연재로 이어가볼까 합니다. 당연히, 제 생각은 그저 제 생각일 따름이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얼룩커 여러분들도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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