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감기

재재나무
재재나무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2024/08/31
여름 감기
정리움
   
열이 온몸을 휘감았다
저 멀리 옛집이 보였다
   
가뭄으로 갈라진 논에 물을 대러 간 할배가 돌아오자
텃밭에 물을 주던 할매가 허겁지겁 뛰어온다
엄마는 비지땀을 흘리며 가마솥에 옥수수를 올리고
증조모는 대청마루 쪽 창을 열고 손부채를 든다
나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대청마루에 걸터 앉는다
할매는 수도를 끝까지 틀어올리고
할배는 웃옷을 벗고 수돗가에 엎드린다
할매가 시원한 물 한 바가지 촤악!! 들이부으면
아! 아아!! 할배의 멱감는 소리
증조모의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고
잘 익은 옥수수가 평상에 나 앉고
나는 수건을 팔랑거리며 달려간다
매미들의 생이 끝으로 치닫는 소리 요란하다
   
수액이 혈액을 타고 흐르자
열이 내리고 나는 눈을 떴다
옛집도 할배도 할매도 증조모도 
엄마도 나도 없는 여름이었다

오래 아팠습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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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그냥 저냥 생활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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