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햇살의 향이 나기를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2/01
   오랜만에 옥상에 빨래를 널었다. 주택에 살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옥상에 빨래를 너는 시간이다. 요즘은 집집마다 건조기가 많아 빨래를 너는 일이 수고롭게 느껴지지만, 건조기에 관심이 없는 나는 빨래를 외부에 널 수 있는 날이 되면 잔뜩 신이 난다. 아무 때나 밖에 널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햇살과 기온, 바람이 모두 적당한 날이라야 빨래를 밖에 널 수 있다. 잔뜩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넣으며 날씨를 가늠한다. 오늘은 널 수 있을까 없을까. 햇살이 조금 부족해도 바람이 적당하면 빨래는 제법 잘 마른다. 바람이 없이 햇살만 내리쬐는 날에도 빨래는 꽤 보송해진다. 온화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이 함께 있는 날이면, 널어둔 지 두 시간만 지나도 포근한 빨래를 품에 안을 수 있다. 그렇게 걷은 빨래에서는 햇살의 향이 난다. 바삭하고 달큼하고 보드라운 햇살의 냄새. 일부러 빨래를 개면서 코를 바짝 갖다 대고 강아지처럼 킁킁 댄다. 햇살의 냄새가 코를 지나 미세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지면, 내 몸 구석구석에 햇살이 닿은 듯 안온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처음 내 이야기를 글로 옮길 때부터 공개적인 글을 썼다. 독자는 지인에 한정된 경우도 있었고 불특정 다수가 될 때도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글이 되지 않았다. 시작은 해도 끝을 내지 못했다.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저 쓰는 게 좋아서 글을 쓰고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 <마더>에서 주인공 도준은 죽은 아이의 시신을 옥상 난간에 마치 빨래를 널듯 널어놓는다. 도준은 영화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아픈 아이가 여기 있다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런 게 아니냐고. 본 지 오래돼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장면은 유독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퇴근길에 홀로 본 영화인데, 내내 무서운데도 꼼짝없이 집중해서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이따금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 장면을 떠올린다. 아픈 나를 좀 봐달라고 세상에 손짓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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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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