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방황하는 이방인

이루지
2021/11/29
최근 이사를 했다.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에서 생활한지 12년.
나는 월세에 산다.

0.
부산에서 서울행을 고작 일주일만에 결심하고 손에 쥐고 올라온 돈은 12만원이었다.
세상에 나 말고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12만원을 들고 서울에 도착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간신히 신길 지하철 역 뒷편에 고시원을 얻는 것이 다였다. 
저녁이 되면 1층 홍어집의 시큼한 냄새와 아저씨들의 담배연기 섞인 고함소리가 들려왔지만 당시의 나에겐 보증된 일자리가 있었고, 한달 뒤에는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무모한 청춘이 있었다.
고시원 에서의 첫날 밤.
10년 뒤 나에게는 적어도 서울에서 전셋집을 얻을만한 돈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망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1.
첫번째 집은 장승배기에 있는 보증금 100에 월세 30만원의 옥탑방 이었다.
지금이야 옥탑방에 낭만이니 로망이니 하는 단어가 끼어들어 있지만, 당시에 옥탑방 이란 춥고 더운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몸 누이면 딱 떨어지는 작은 방. 화장실은 방 옆 벽에 가벽을 세우고 그 위에 방수천을 덮어놓은 곳이었다.
겨울에는 연수기를 틀어놓고 30분은 기다려야 덜덜 떨면서라도 샤워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난 그 닭장같던 고시원에서 탈옥에 성공했으니까.
성공은 달콤했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다.
또다시 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추위나 월세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늦은 저녁 내 뒤를 쫓아 옥탑방까지 따라온 낯선 남자는 나에게 서울살이의 매운맛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조금 더 돈이 들더라도 '안전함'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다시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2.
작고 하찮은 급여에 월세와 공과금을 내다보니 직장생활을 했어도 모은 돈은 300이 고작이었다.
당시 서울의 월세 시세가 대충 보증금 500에 월세 30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즈음 그 비슷한 제목에 연극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
여튼, 서울 어느곳에 방을 구하든 모자른 돈 이었고, 돈이 되는대로 구한 집은 신림에서 더 들어간 난곡에 자리했다.
주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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