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루틴

매일매일 눈팅을 하면서도 얼룩소에 글을 쓰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그냥 허공에 외치는 기분이 들지만서도 그래도 ‘여러분 그동안 잘지내셨나요!’ 하고 말해봅니다……
지난번에 슬쩍 말씀드렸지만 책방의 두번째 매장을 서울에 오픈하고 나서 그야말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바쁜게 좋은거라는 말을 덕담처럼 많이 주고받는 요즘이지만 사실 저는 그 말에 그렇게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바쁠수록 스스로 점점 건조해지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어서요. 뿐만아니라 저같은 1인가구의 경우 매일매일의 기본적인 수고와 노동이 필요한 집안일에 소홀해지기 일쑤라서 바쁘게 보낼때면 집안의 수척함이 바로 티가 나고.. 그런 집안에서 먹고 자는 일은 상당히 서글픕니다.

그런 이유로 최근 저희 삶의 질은 그다지 윤택하지는 못했습니다. 거처도 겨우겨우 청소하고, 좋아하는 달리기는 못한지 오래,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하루를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할 틈도 없이 곯아떨어지고 허겁지겁 일어나구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짬을 내서 친구의 전시를 보러갔는데요.
최수진이라는 작가의 개인전이었습니다.

최수진, <Fruity Buttercream>

그의 그림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더 재미있는데요. 마치 누군가의 보물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온갖 다양한 것들이 캔버스 안에 가득하거든요. 해와 거미와 체리와 쥐와 배와……
그때 최수진 작가가 그런 말을 했어요. 별 수 없이 혼자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느끼는 예술가의 불가피한 외로움 같은 것이 있다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들을 그림 안으로 들이게 되더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림 속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로부터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된다고.

그의 그 태도, 자신의 내부에서 ‘좋아하는 마음’ 을 끊임없이 작동시키려 하는 그 태도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몰라요. 그때의 제가 특히 바쁘고 정신없어서 더 그랬겠지요. 그 즈음 매일매일 제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것은 싫어하는 마음, 불안해 하는 마음, 해내야 하는 마음, 간신히 안도하는 마음…. 심지어 허기를 느낄 때 조차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기쁜 마음으로 먹고싶은지가 아니라 지금 뭘로 간단히 떼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나의 허기를 조금 귀찮아했으니까요.

기왕 이렇게 살아있는데, 매일 ‘좋아하는 마음’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건 나의 인생에게 너무 못할 짓이 아닌가싶더라고요. 그날 결심했어요. 매일매일 무엇이든 좋아하는 마음, 아름답다 감탄하는 마음을 꼭 한 번은 가져야겠다고. 그리고 나도 최수진 작가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려봐야겠다고.
그렇게 평소 들고 다니는 노트 양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1월 끝자락부터 그린 제 노트에요. 못그리는 그림실력은 감안해주세요 ㅎㅎㅎㅎㅎㅎ

11월

가장 먼저 그린 것은 그날 밤 집에 오면서 본 달이었어요. 한 귀퉁이가 우그러진 달이 정말 아름답더군요. 그 날 이후로 영화의 한 장면, 선물로 받은 책방 로고가 들어간 쿠키, 청소기를 돌리며 집을 청소할때마다 의자 뒤에 숨는 우리집 털인간의 구부정한 등, 책을 읽다가 다리에 꼭 걸쳐놓는 나의 버릇…뭐 그런 걸 두서없이 그렸습니다. 다 그려놓고 보니 2021년 11월의 내 (다소 못생긴) 조감도 같았어요.

물론 12월도 진행중입니다.
12월
아직 빈 여백이 눈에 많이 띄지요…? 저의 12월은 무엇으로 채워지게 될까요. 
별 것 아닌 루틴이지만 제 마음도 조금씩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짬을 내서 달리기도 하고 있고 허기를 느낄 때마다 귀찮아하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마음’을 꼭 쥐고 있는 제 내면의 악력이 든든합니다.

이런 마음을 좀 더 세게, 좀 더 강하게, 좀 더 밀어붙이고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얼마전 시 낭독 제안을 받고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를 읽었는데요. 그런 마음을 계속해서 단련한다면, 내가 메리 올리버 같은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메리 올리버 적으로 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좋아하는 마음의 두근거림을 함께 속닥이면서 계속해서 바라보는 삶.

벌써 연말입니다.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기어이 아름다움들이 있습니다. 부디 무엇에든, 어떤 것이든 ‘나는 이걸(이 사람을) 좋아해’ 라는 마음을 꼭 잊지 않고 사셨으면 합니다. 저두 그렇게 하겠습니다.
굿바이 선물로 김연수 작가님, 김소연 시인과 함께 낭독한 영상을 첨부합니다. 시가 정말…..좋습니다. 크흑
https://youtu.be/YOj6qxbBH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