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건 아니다 - 6. 매듭과 자유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12/31
알츠하이머치매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주기가 되었다. 2011년 늦가을, 모처럼 친정식구들이 다 모였다. 언니 옆에 머쓱하게 앉아 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형부라고 불렀다. 엄마가 흠칫했다.
   
“너는 비윗살도 좋구나, 형부라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냐~.”

엄마의 언짢은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부르지 않으면 더 서먹해질까봐 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아버지기일에 새 식구를 데려온 건 언니의 암묵적인 용인이었다.
 
  
*   
언니는 여러 ‘사업’을 전전했다. 한때 양재공부를 했던 솜씨가 무색하게 고깃집을 곁들인 한식당을 운영했다. 그러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지방 산업공단이 있는 곳의 4층 모텔을 인수했다.모텔은 공단직원들 기숙사로 이용되면서 3년 정도 호황이 이어졌다. 엄마는 ‘그 사람’이 기회를 틈타 언니한테 밀고 들어왔다고 의심했다. 

형부는 모텔이용객으로 기숙하고 있었다. 건물 곳곳에 수선과 손질이 필요하다 싶으면 언니 손이 가기도 전에 먼저 나타나 해결했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장거리 운전이 필요할 땐 운전자를 자처했다. 한 공간에서 소소한 정이 들었을까. 그렇게 눌러앉았다. 
   
형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텔운영을 같이했다. 정작 부부로 일을 하면서부터는 언니에게서 건, 일에서 건 정성이 덜했다. 그는 나를 꼭 우리처제라고 불렀다. 친절한 목소리로 과하게 다정다감했다. 썩 미덥지 않은 마음이 그래서 들었다. 언젠가 모텔 주차장의 색 바랜 각종차들 가운데 유난히 돋보이는 회색그랜저 차가 있었다. 
   
손님 차 인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 형부가 나왔다. 새 차를 뽑은 건 언니와 재밌게 드라이브도 하고 좋은 곳도 가려한단다. 우리처제도 같이 다니자며 뭔가 무마하려는 것처럼 말이 늘어졌다. 언니는 드라이브나 재미라는 것보다 또 다른 사업마인드가 있는 게 분명했다. 형부 말만 듣는다면 두 사람은 누구보다 낭만적이고 다정한 부부였다. 
   
   
by 픽사베이 dea jeung kim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