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그 남자 그 여자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6/15


그 남자 

집 안에 있던 식기들이 와장창 쏟아져 나왔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 밖으로 내던진 탓일까 마당은 전쟁통을 방불케한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작은 몸을 움츠릴 수 있는 만큼 움츠린다. 건넛방에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엄마보다 젊은 여자가 이 난리통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얼굴로 말갛게 앉아 있다. 악을 써 머리가 산발인 채 비통한 표정의 볼품없는 엄마는 저 여자와 너무나 이질적이다. 잠깐 이어지던 짧은 침묵이 끝나고 누군가 철제 대문을 발로 꽝 차며 들어온다. 

“형님, 이건 너무 하지 않소? 지금 형수가 있는데 웬 말입니까? 어디서 못 배워먹은 짓입니까? 저 여자 데리고 당장 나가소.”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막내 삼촌이었다. 구세주가 되어줄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고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기대는 실망이 되고, 실망은 다시 공포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삼촌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피투성이가 된 삼촌을 보자 엄마는 주방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나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아홉 살의 누이가 부들부들 떨며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전쟁통의 마당을 지나 철제 대문을 넘고 골목을 뛰었다. 어디까지 왔을까?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른다. 그 장면 이후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해가 다 저물고 다시 문턱을 넘어 들어선 집은 살림살이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 건넛방에 있던 여자와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삼촌도 없었다. 물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는 엄마의 입에서는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온 것을 알아차린 엄마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세수를 하고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었다. 조금 전의 상황은 텔레비전 속의  막장 드라마가 되어 아무도 다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다음날 평소처럼 우리는 학교에 가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고 숙제를 했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사를 갔다. 엄마도 아버지도 모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제권을 쥐고 있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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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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