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숯덩이 같은 속내를 걷어내며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5/18
  열여섯 살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안경을 썼다. 계속 쓰는 건 영 불편해서 수업시간에만 칠판을 보기 위해 꺼내곤 했다. 안경을 벗지 못할 만큼 눈이 나쁜 편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물두 살에 처음 렌즈를 맞췄다. 당시는 아나운서 지망생이라 카메라 테스트를 준비했는데, 카메라 위치를 정확히 찾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결국 렌즈를 끼게 되었다.

  뭐가 달라지겠어. 똑같겠지. 이런 나의 생각은 렌즈를 착용함과 동시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안경점에서 맞춘 렌즈를 처음 끼고 인근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정말 화들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잡티가 한가득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안경을 쓰고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명해진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게 내 얼굴이라니. 나도 모르는 나를 타인이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런 얼굴로 살고 있었음을 나만 몰랐구나. 

  그 이후로 나는 더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다. 원래도 거울과 그리 친하지 않았는데 더 멀리 하게 된 것이다. 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 흠결을 있는 그대로 안아줄 넉넉한 마음이 내게는 없었다. 그날 이후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어쩌다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는 날이면, 손이 자꾸 올라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을 찾아 짜내고 건드린다. 이제는 재생력이 떨어져 오히려 더 큰 자국이 된다는 걸 망각한 채. 그러니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 한다. 

  가끔 찍은 사진을 보면 이십 년 전 그날처럼 화들짝 놀란다. 사진 속에는 웬 중년 여성 하나가 떡하니 들어가 있다. 그 속의 나는 내가 막연히 그리던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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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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