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은 내 알 바[Arbeit]가 아니다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09

 열아홉에 입시논술학원을 찾아갔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대학은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수능 공부를 한 적 없는 내게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H를 처음 만났다.
​​
 그는 내게 뭐하러 오셨냐고 물었고, 입시학원에 입시 준비하러 오지 그럼 뭐하러 오겠냐고 답했고, H는 살짝 갸우뚱거렸고, 나는 대체 왜 당신이 갸우뚱거리는지 몰랐고, 여하간 그럼 논술 문제를 드릴 테니 다음 주까지 답을 써오라고 하였다. 
​​
"혹시 담배 피시나요?"
"네, 핍니다."
"아, 그럼 같이 담배나 한 대 피고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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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는 한껏 반가운 얼굴로 나를 주차장에 데려갔다. 논술학원이라 그런가, 미성년자와 이렇게 거리낌없이 담배를 나눠 피다니. 역시 글쓰는 사람들은 이리도 자유분방한가보다. 
​​
 "학교는 안 다니시는 거죠?"
 "네, 아무래도."
 "오시면 다른 고등학생들이 있을 텐데, 방은 넓으니 그냥 아무 데나 앉아서 글 쓰시면 됩니다. 
 이제 시험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수업은 거의 없구요. 저희는 뭐, 담배 피면서 첨삭하죠."
 "네, 좋아요."
​​
 우리는 다음 주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집에 오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아, 재밌겠다. 입시생의 하루란 무료한 것. 나는 적어도 일 주일에 한 번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아 기뻤다. 
​​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서로에 대한 깊고 너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나는 다음 주에 드디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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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주일이 지나서 만난 H가 나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이런 거였다.
​ "내 존댓말 내놔."
 "네?"
 "미성년자인지 몰랐어. 그렇게 안 보이는데." (여기서 조금 빡쳤다.)

 "학생 등록할 때 92년생이라고 썼잖아요."
 "못 봤어. 그리고 92년생이 미성년자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도 그게 제 책임은 아니잖아요."
​ 그러게, 하는 눈빛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역시 당신도 구린 어른이구나. 
​​
 "그럼 자퇴한 거야?"
 "네, 탈학교생이에요." (그 와중에 나는 단어를 정정하고 있었다.)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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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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