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식의 머선말29①|About MZlang: 나는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아젠다2.0
아젠다2.0 · 우리는 담론을 생산하고 모읍니다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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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일이다. 영화 <기생충>이 막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평론가 이동진은 그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한 줄 평을 남겼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그런데 이 평은 뜻밖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평가라거나 영화에 대해 부당한 비난을 했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대중이 알기 힘든 단어를 썼다는 이유에서였다.¹
나는 이 사건을 맞닥뜨리고 적잖게 당황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말들을 마주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높은 학식을 갖춘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상천지의 모든 말들을 알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더욱이 한 줄 평 같은 글은 함축적으로 뜻을 전달해야 하는 특성상 종종 더 낯선 단어들이 쓰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동진의 평론 그 자체는 놀라울 것이 없었다.
문제는 그 평론에 대한 몇몇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말을 마주하게 했다는 이유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동진이 자신들에게 들이댄 단어들을 지식인의 허세로, 자신들에 대한 무시와 경멸, 모욕으로, 다시 말해 일종의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러한 해석의 근거는 명백히 더 쉬운 말들이 있는데도 굳이 낯설고 어려운 말들을 썼다는 것이었다. 가령 ‘상승과 하강’은 ‘위와 아래’로 대체할 수 있고, ‘명징’은 ‘분명’이나 ‘확실’로 대체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대중에게 지식인으로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이 일은 이른바 ‘명징직조 사태’로 불리며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 ‘명징직조 사태’를 이야기하는 이동진 평론가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갈무리
내 생각에 사실 여기서 이동진이 실제로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었느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그는 그 사실을 부인했고 어차피 우리는 그의 머릿속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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