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4/28
  소설. 두 글자가 글감으로 정해졌을 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올 게 왔구나. 몇 년째 내 머릿속 귀퉁이에 살고 있는 단어, 소설. 두 글자는 항상 꼬리표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를 성가시게 한다. 가끔은 아예 눈앞을 가로막고 꼼짝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영영 떠나보내거나 한바탕 정면으로 대거리를 해봐야 이 상황이 끝날 텐데, 어느 쪽도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 선택의 갈림길에서 빠르게 결정한 뒤 그대로 직진하는 나의 성격과는 너무나 맞지 않는 모습이다. 나는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글옷. 함께 글을 쓰던 언니가 소설가가 됐다. 그냥 소설가도 아니고 30만 부가 넘게 팔린 책의 작가가 되었다. 언니의 소식을 듣고 샘이 나기는커녕 뛸 듯이 기뻤다.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선배가 옆에 있다는 게 반갑고 고마웠다. 우리는 십 년 전 소설반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오랜만에 닿은 연락에서 요즘 에세이를 주로 쓴다는 내 말에 언니가 대답했다. 자신에게 맞는 글옷이 따로 있지. 글옷이라는 단어가 퍽 마음에 들었다. 시, 소설, 에세이... 내게 맞는 글옷이라.  

  언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늘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적어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는 것처럼 언니는 세상에 없던 사람과 사연들을 글로 생생하게 풀어내곤 했다. 언니의 초창기 글에는 신기하게도 십 대 남자아이가 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언니가 청소년문학작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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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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