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그녀의 비밀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5/31
"엄마 선생님이 이거 적어 오래요." 
아이가 건넨 종이에는 부모의 최종학력을 적는 란이 있었다. 고졸인지 대졸인지, 마지막으로 졸업한 학교의 이름은 무엇인지. 종이를 슬쩍 본 여자는 아이에게 다시 돌려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둘 다 고졸이라고 적어. 아빠는 OO고등학교, 엄마는 ㅁㅁ고등학교."
여자는 그 말을 하고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아이는 엄마의 말을 되새기며 종이에 또박또박 글자를 써내려 갔다. 쓰면서 생각했다. 근데 왜 엄마가 저 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까. 엄마가 그 동네에 살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엄마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잖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호구조사는 계속 됐고, 그때마다 여자의 반응은 같았다. 아이가 매번 석연찮은 느낌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아이가 열일곱이 되었을 때, 한 집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병이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아이는 생애 첫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는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얼어붙어 있었다. 눈물을 흘려야 할 것 같았지만, 눈물은 이상하리만치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관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순간이 오고서야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참았던 눈물은 더 오래 더 아프게 흘러내렸다. 

아이를 둘러싼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안 울어요. 엄마는 할 만큼 했으니까. 후회가 많은 사람들이나 우는 거야. 아이는 엄마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할머니한테 최선을 다했구나. 아이가 스물하나가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떠나셨다. 아이의 엄마는 그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할머니 장례식을 떠올렸다. 엄마는 그때와 같은 마음인 거야. 엄마는 할아버지한테도 최선을 다한 거지. 

아이가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이는 궁금했다. 이번엔 엄마가 눈물을 보일까. 그때까지 아이는 단 한 번도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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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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