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순간, 자식의 도리를 다 한 것이다.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6/19

친정 엄마의 생신이라 겸사 겸사 주말에 시댁과 친정을 다녀왔다.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도 늘 없다고 말씀하시는 엄마와 시어머니께 드릴 영양제와 화장품 따위를 챙겨 먼 길을 나섰다. 시댁은 내가 사는 곳에서 무려 330km나 떨어진 바다가 있는 도시, 포항이다. 

자주 볼 수 없는 손주들이 얼마나 반가울까? 시부모님은 버선발로 나와 아이들을 안아주신다.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딸아이도 이제 10살이 되니 부끄럼을 알고 낯을 가린다. 새침하게 인사를 하고 쇼파에 앉는 딸아이와는 달리 여전히 해맑은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꼭 안아준다. 

장거리 운전으로 오는 내내 커피와 과자 부스러기로 더부룩해진 속을 정성이 가득한 어머님의 밥상으로 달랬다. 시댁의 밥상엔 항상 갈치나 조기 같은 생선이 오른다. 갈치구이와 오징어볶음, 잡채와 갖가지 반찬으로 차려낸 한 끼를 맛있게 먹었다.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벽 한구석에 보기 싫게 투박한 검은 펜 자국들이 보인다. 어린 손주들의 키를 잰 손길들이다. 자주 보지 못하는 손주들이 하루하루 크는 순간들이 아까워 기록해둔 자국들을 보니 여러 감정들이 든다.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이 들었다. 잠자리가 불편해서인지 아침부터 도시를 삼킬 듯한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5시 30분이다. 그대로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주방에서 달가닥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시댁이라는 불편한 단어에 다시 잠들긴 어려웠다.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땀을 흘리며 국을 끓이고 양념에 재워둔 갈비를 꺼내고 계셨다. 두 분만 계실 땐 7시도 안 되어 식사를 하신다고 했다. 그건 친정 부모님도 마찬가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반찬을 나눠 담고 서툰 손을 거들었다. 결혼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어머님의 주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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