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화
연구자
사회학 역사학 연구자
혁명과 해방을 꿈꾼 사회주의자 청년의 극렬친일파 변신 - 신태악
전차는 사라지지 않았다. 변화했을 뿐.
혁명을 한다며 떠난 아버지들은 어디로 갔는가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5)
혁명을 한다며 떠난 아버지들은 어디로 갔는가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5)
혁명을 한다며 떠난 아버지들은 어디로 갔는가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5)
<알렉시스>는 귀족 아버지에 의해 버려진 10대 소년 알렉시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려는 시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는 결국에 성공을 거둔다. 이처럼 롤로트, 팡팡, 알렉시스는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뭔가 의미가 있는 프로이트적 가족 로망스의 변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부모가 더 높은 사회적 지체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상상하는 것으로 설정되는 대신에, 그들은 실제로 귀족의 아들과 딸로 그려지며, 소설 속의 이야기는 그들을 원래의 지위로 복구시킨다. 그렇다면 그들의 문제는 아버지들의 낮은 지위라기보다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기에는 너무도 야심이 커서 자식들의 요구에 불충분한 관심만을 보이는 아버지인 것이다.
이렇듯 혁명 전야에 아버지들은 문학에서 큰 쟁점이 되었다. 폴과 비르지니는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
억압적인 아버지에서 관대한 아버지로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4)
억압적인 아버지에서 관대한 아버지로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4)
억압적인 아버지에서 관대한 아버지로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4)
문학에서 억압적인 아버지들이 관대한 아버지로 바뀐 것, 더욱더 감성적인 된 어머니와는 대조적으로 아버지들이 제외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어린이들이 더욱 더 흥미롭게 바뀐 것은 모두가 18세기 프랑스에서 발전한 소설이 본래 반가부장적이었음을 시사한다. 마르크 로베르는 “소설을 쓰는 것에는 두 가지 방식밖에 없다.
하나는 세계와 저돌적으로 싸우면서 그 세계를 뒷받침해주는 사실주의를 따르는 ‘사생아’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이나 싸우기 위한 수단이 결여되어 있어서 도피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세계와의 대면을 회피하는 ‘고아’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 두 방식 중 어느 것도 아버지의 직접적인 권위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로베르의 견해에 따르면 소설이라는 장르는 개인적 몽상의 영역에서 문학의 세계로 프로이트적인 가족 로망스가 등장하게 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진짜...
좋은 아버지의 성장과 몰락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3)
좋은 아버지의 성장과 몰락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3)
좋은 아버지의 성장과 몰락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3)
국왕이 높은 권좌에서 전락한 이야기는 좋은 아버지라는 이상이 겪게 되는 운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만일 국왕이 국민들의 아버지라면, 아버지 상의 변화는 국왕이 대중들에 대해 갖는 위상에 확실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과도한 혹은 폭군적인 가부장의 권위에 대한 비판은 1789년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인류가 정치적, 지적 미성숙기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계몽사상의 확신은 대중적 관심사에 대한 참여 요구의 증가로 이어졌다. 18세기에 대중여론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출현했던 것은 국왕의 신하/자녀라는 관념이 자율적인 인간/시민의 관념으로 성숙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린이를 애정과 교육적 관심을 맡을 자격이 있는 독자적 개인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는 18세기에 서유럽에서 일어난 전반적인 경향인데, 그것 역시 ‘좋은 아버지’라는 이상의 창조에 도움을 주었다. 루소를 비롯한 계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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