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기념일(2)-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8/28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며 점점 내 이름 석 자가 희미해져 갔다. 인생이란 것이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속해 있던 가족에서 떨어져나와 내 가족을 만든다는 것, 참 가슴 벅차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얻는 것만큼 잃어야 하는 것도 있었고, 희생과 포기가 따랐다.

11년 전의 그날이 지금도 생생한 것은 생애 처음 경험한 고통과 잊지 못할 감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내 몸에서 생겨날 때 속이 뒤틀리고 메스꺼웠다. 이유 없이 구역질하는 시기가 찾아오고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부풀었다. 만삭이 가까워져 올 때쯤엔 도저히 누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부른 배를 움켜잡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잠드는 날들이 잦아졌다. 더는 내 안에서 품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여겼을 때, 아이는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유선염으로 40도 가까운 열이 올라도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항생제를 마다하고 가슴 마사지를 받았다. 효과를 알 수 없는 민간요법에 기대어 알로에를 사다 뜨거운 가슴에 붙이기도 했다. 고물고물한 새끼들이 커 나가는 모습을 눈에 담는 동안 희미해져 가는 내 이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 몸이 힘들수록 아이는 더 웃었고 한 뼘 더 자랐다.

어느덧 내 운동화보다 한 사이즈 더 큰 신발을 신는 아들은 이번 생일 선물로 현질을 위한 기프트 카드를 요구했다. 핸드폰 게임을 원 없이 하고 싶다는 '요즘의 아이'가 된 아들을 보면 그날의 벅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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