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제목

빅맥쎄트
빅맥쎄트 ·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먹은만큼 행복하다
2022/10/16
교회에 가면 예배 중에 헌금을 내는 시간이 있다. 내고 안내고는 자유이고, 금액의 액수도 자유이다 (헌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다). 헌금의 종류중에 '감사헌금' 이라는 것이 있다. 1주일 동안 지내면서 '이러이러 해서 감사합니다!' 는 내용을 봉투에 적어서 헌금으로 내는 것이다. 

나는 매주 감사헌금을 낸다. 매주 엄청난 감사의 제목이 있다기보다는 '감사할 거리' 를 스스로 만드는 것에 더 가깝다.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는 연습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요즘은 도통 감사할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감사보다는 '퍼붓고 싶은' 제목들이 많다. 대출이자는 왜이리 높은지, 회사는 왜 이런지, 아이들은 왜이리 말을 안듣는지, 아버지는 갈 수록 몸이 더 안좋아지는지 등.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주말에 지인 결혼식이 있다고 형이 잠시 내려왔다. 아버지 상태가 계속 안좋기때문에 본가에서 하루 자면서 부모님 상태를 계속 지켜봤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 잘 지내" 이런 인사를 굳이 전화로 하지는 않기 때문에 전화가 왔다는 것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좋은 내용이 아님을 직감했다.

수술 이후 몸과 마음이 급속도로 약화된 아버지가 치매 초기같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극도로 초조해하시는 모습과 10분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 하루종일 변화가 없는 표정, 형이 말을 해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던 아버지. 형은 어쩌면 정신이 온전한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회사 일만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조차 힘에 부친다.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서 삶에 의욕이 다 꺾여버렸는데, 나는 나대로 힘들다고 나의 삶에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형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곁에는 병든 몸을 갖고 이제는 정신마저 온전하지 않아 보이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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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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