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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 매달 저축하는 80만원이 아까워


어제 부장님과 점심을 먹던 중 TV를 보다가 웃음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TV에서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에 육박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1) 그 순간 전날 읽은 기사가 포개어졌습니다. 만 0세 A씨가 24억대 집을 구매했다는 내용의 기사였지요.2) 두 내용이 머릿속에서 엉키며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앞에 있던 부장님은 제 웃음을 보지 못하셨지요. 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집 이야기를 해 보려 해요. 

1) "이젠 화도 안난다"…서울 아파트값 평균 12억 육박, 올해만 1.5억 올랐다
 https://www.mk.co.kr/news/realestate/view/2021/10/942750/ 

2) 만 0세가 24억대 집을 샀다고요?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005019002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작은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청년'입니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제가 두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셨을 텐데요. 차차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조금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 보겠습니다. 바로 제 소득과 주거 상황에 관한 내용이에요. 매월 열심히 가계부를 쓰고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합니다.

가계부의 기본은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을 파악하는 거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작년 말, 3000만원 이하의 연봉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월급이 200만원 언저리라는 것이죠. 집을 주제로 한 글이니 주거비부터 살펴볼게요. 저는 다행히(?) 전세를 구해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고, 다행히 만 34세 미만 청년이어서 주택도시기금의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을 받을 수 있었어요. 아, 물론 80%만 지원해 주는데요, 다행히(????) 군대에서 저축한 2천만원이라는 목돈이 있었기에 무사히 전세금 1억짜리 다가구 주택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전세 대출금 이자가 한 달에 8만원 정도 나갑니다. 혹여 제가 월세살이를 했다면, 아마 이 금액의 다섯 배 정도는 더 냈을 거예요.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법하죠. 전세이자와 가스비와 수도세, 전기세 등을 더하면 약 12~24만원정도 돼요(여름과 겨울 가스비 편차가 큰 편입니다). 월 평균 18만원을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네요. 제가 열심히 '다행'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아시겠나요?

다음은 식비입니다. 출근하는 평일에는 점심을 사 먹습니다. 이 돈이 한 달에 10만원 정도 되네요. 집에서 밥을해 먹기 위한 식재료비는 약 10~13만원, 밥을 해 먹기 귀찮을 때 사 먹은 내역을 기록한 외식비는 1만원~10만원(편차가 크네요)입니다. 넉넉하게 잡아서 한 달에 식비로 30만원 정도 쓰고 있네요.

교통비는 약 10만원, 휴대폰은 4만원씩 내던 걸 이번에 약정이 끝나서 17000원짜리 알뜰폰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에 인터넷 사용료 15000원을 더하면 월 15만 5000원을 필수 지출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네요. 필수인가 아닌가 고민했던 보험료 85000원, 마음에 맞는 단체 두 곳을 후원하는 데 55000원, 시사인과 월간지 하나 구독하는 데 26000원을 내고 있습니다. 가계부에는 식비 항목으로 기록하지만 필수적인 건 아닌 커피, 맥주, 과자, 과일 등을 사먹는 데 3만원 이내로 쓰고 있고요, 샴푸나 화장지, 면도날과 같은 생활용품을 사는 비용이 평균적으로 2만원 정도는 드네요. 이 비용을 합해 보니 21만 6천원이네요. 아, 애인과 데이트하는 데 15만원 정도 쓰고 있어요.

여기까지의 금액을 다 더하면? 100만 1천원입니다. 정확한 제 월 소득은 1,975,860원. 남은 돈을 다 저축하더라도 100만원이 안 됩니다. 소득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요? 사실 그래서 공개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 또래 사회 초년생 70%가 이 수준이라고 하네요.3)

3) 어렵게 취업했지만… 청년 73%, 첫 월급 200만원도 안된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720518005?OutUrl=naver 

앞에서 나열한 지출 내역이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꾸준히 맥주도 사 먹고 있고, 저를 대신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힘써 주는 단체에 후원도 하고 있으며, 외식도 하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기록하지 않았지만 친구 생일 때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제가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좋은 책이 있으면 사 읽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매월 약 80만원 정도 저축하고 있어요.

구구절절 말이 많았네요. 다시 1)의 기사로 가 봅시다. 올해만 집값이 1.5억이 올랐다고 합니다. 제가 한달에 80만원을 저축하면 1년에 천만원도 모으지 못하는데, 집값은 1.5억이 올랐네요. 참고로 1년에 천만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한 달에 83.33333만원을 저축해야 합니다.

언젠가부터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포기한 걸까요? 체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던 중 신기한 개념을 발견했어요. PIR이라는 건데, 가구소득 대비 집값(price to income ratio)을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에서는 '소득을 하나도 안 쓰고 몇 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는지'로 활용하더군요. 기사에 따르면 18.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4) 아, 이 지표는 가구 소득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했군요. 그들의 소득이 466만 8410원이라고 하니 저는 아마 40년 쯤 걸릴 것 같네요.

4) 멀고 먼 ‘내 집 장만’…서울선 한 푼 안 쓰고 18.5년 모아야[부동산360]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0925000002 

집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주거 안정에 대한 불안은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월세 계약 갱신 청구권의 도입으로 일단 다음 재계약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주인이 좋은 분이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는 어떻게 할까요? 1년에 1천만원 모으기도 힘든 제가 집을 살 수 있을까요? 주택도시기금의 전세자금대출 역시 최대 10년까지만 연장이 가능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입자로 사는 서러움이 드러납니다. 보금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지요.

다시 제 가계부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매달 80만원 가량을 저축합니다. 사실 이 돈은 '그냥' 모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 모아두면 어딘가엔 쓰겠죠. 결혼자금으로 쓰든, 여행 비용으로 쓰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집을 사든.

이쯤에서 우리는 집을 산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라는 혹자의 말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막연히 저축하고 있는 돈으로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매달 50만원, 아니 80만원을 낸다 해도 저는 들어갈 것 같습니다. 단, 그 집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거주할 수 있다면요. 쉽게 말해 쫓겨날 걱정 없는 임대주택이라면요.

과문하여 그 임대주택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까지는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제는 집을 사는 '곳'으로 생각이 전환하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무엇보다 매달 목적 없이 저축하는 80만원이 아까워서 끄적여 봅니다. 이걸로 임대료 내고 남은 돈으로 좀 더 맛있는 거 사 먹으며 살 수는 없는 걸까요?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혹은 그것이 불가능해질 때 집값은 잡히지 않을까요.
 
너무 어렵지 않겠냐고요? 글쎄요, 제가 집을 사는 것도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
글만 빽빽하게 쓰고 보니 딱딱한 거 같아서 뒤늦게 추가한 제 집 사진입니다. 이 집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