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가난과 삶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3/03

1. 가난을 몰랐다

제철인 파래가 보인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향긋한 바다 내음이 퍼지는 듯했다. 한 팩을 장바구니에 담고 이것저것 장을 봐 집에 왔다. 한 덩어리로 뭉쳐있는 파래를 소금 한 스푼을 넣어 바락바락 치대어 씻었다. 깨끗한 물로 몇 번을 헹궈내고 건져올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어주었다. 채반에 받쳐둔 파래는 양이 반은 줄은 듯하다. 

‘파래무침’이라고 검색을 하여 블로그에 레시피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기본은 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와 두 분이 계시는 집에서는 말을 할 일이 별로 없다. 식사할 때 잠시 떠드는 것이나 우리의 안부전화에 대꾸하는 정도로 제한적이다. 

어눌한 발음으로 파래무침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뜻대로 나오지 않고 자꾸만 막히는 말들은 엄마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다시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지경까지 깊숙한 동굴로 끌고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해야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귀찮을 정도로 묻고 또 물었다. 

무를 채 썰어 약간의 소금에 절였다 물기를 꼭 짜라, 파래는 물을 너무 짜 버리면 안 되고 적당히 남겨둬야 촉촉한 무침이 된다며 말을 이어나간다. 싱크대 아래에 다 흘려보내고 남은 파래가 반 밖에 안된다고 하니 어설픈 딸의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터진다. 아프고 난 뒤 웃음도 사라져버린 그녀의 얼굴이 전화기 너머 보였다. 

촉촉한 파래와 아삭아삭 씹히는 무의 식감이 어우러진 새콤달콤한 엄마의 파래무침을 떠올리면 동그란 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날들이 생각이 난다. 그 상에는 그리운 할머니도, 젊은 부모님도, 어린 사 남매도 있다. 식탁도 없던 터라 끼니 때마다 접어두었던 상 다리를 펴는 것이 일이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신 밥을 퍼먹는다. 

심부름으로 천 원 한 장을 들고 슈퍼에서 봉지 한 가득 담아오던 콩나물은 콩나물무침, 김치 콩나물국이 되었다. 남은 밥에 김치를 썰어 넣고 갖은 재료와 부글부글 끓여 낸 경상도식 김치죽은 알뜰하게 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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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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