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나는 혼자다.

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06/30
초여름의 햇빛이 무디게 느껴진다 땀방울 두어개가 뺨을 흘러내리지만, 몸 속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마주 앉은 그의 표정이 복잡하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도 나는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는다.

"내가 잘못했어. 제발."

이미 한 차례 겪었던 일이다. 두번째는 더 쉬웠다. 나는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꽤 긴 연애를 했었다. 5년? 6년? 익숙해져 날짜를 세지 않게 될 정도로 편해진 사이,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연인이란 관계의 경계선이 희미했었다. 단지 외로움 하나 때문에 시작한 연애였기 때문일까. 교집합이 없는 연애는 불협화음이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며 '연인 관계'는 애정이 아닌 의무가 되어버리며 서로에게 족쇄가 되었다. 그의 잘못이 내가 이별을 택한 결정적 이유였지만, 어쩌면 긴 연애 그 자체도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나 PC방 싫다고."

"그럼 뭐 할건데?"

그는 게임을 좋아했다. 반면 나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희미했다. PC방을 전전하며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가장 자주 가는 데이트 장소가 PC방이 되어 버렸다. 게임을 하지 않는 나에게 PC방 데이트는 그가 게임을 하는 동안 혼자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었다. 데이트를 하지 않을 때면, 그는 종종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 역시 대부분은 게임이었다.

받지 않는 전화를 끊은 뒤, 한참 뒤에야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왜 전화한거야? 너때문에 졌잖아!"

스피커 너머로 그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게 왜 내 탓이야? 내 전화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했다는 그의 이야기에 할 말을 잃는다.

"화를 낼거면 게임을 왜 해?"

"재미있으니까."


함께 PC방에 갔을 때에도, 화면에 '패배'라는 단어가 뜰 때마다 그는 짜증을 냈다. 욕설이 튀어나온다거나, 책상을 내리친다거나, 팀원 중 한 명에 대한 불만을 잔뜩 늘어놓는다거나. 내가 왜 이걸 받아줘야 하지- 그럴 때면 나 역시도 날을 세운 채 말다툼을 이어나가다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럼에도 게임으로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1.4K
팔로워 320
팔로잉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