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햇것, 풋내기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2/14

환자라는 사내의 두꺼운 손이 내 뺨으로 날아왔다. 알코올 솜과 기구들을 담은 트레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먹먹한 귓가에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온다. 

“하기 싫다고 했잖아!”

뇌 수술을 하고 병실로 옮겨져 며칠째 입원 중인 환자의 혈당체크를 하던 중이었다. 평소와 달리 예민해진 상태에 감정 조절이 잘 안되었을 환자의 심경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기에는 나 또한 속이 좁은 풋내기 간호사였다. 보호자 아주머니께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숙인다. 붉게 부어오르는 뺨의 통증보다는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재빨리 주워 담았다. 병동 데스크로 돌아와 담당 주치의에게 보고를 했다. ‘미친놈’이 아니냐는 말로 나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주치의와 병실로 회진을 갔다. 

“환자분, 이런 식으로 행동하시면 강제 퇴원입니다. 마음대로 하시고 폭력 휘두르는 환자는 더 이상 입원치료 못 하니까 퇴원하세요!”

조금 전 두 눈을 부라리던 황소 같던 사내는 사라지고 의사 선생님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순한 양 한 마리가 있었다. 
픽사베이
대학 졸업 후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했다. 나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정을 받았고 보람을 느꼈던 순간도 많았다. ‘잘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면 되겠다.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불합리한 처우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사직을 했다. 그리고 도망치듯 그동안 번 돈을 가지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여자 혼자 외국을 간다니 보수적인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를 이기며 내 생애 처음으로 외국을 나갔다.

비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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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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