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9/01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P.216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었다. 생전인 1970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남긴 660여 편의 에세이 중 35편을 선별한 책이다. 거장보다는 조금은 평범한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일상들이 참으로 귀한 보석 같았다. 벽촌 산골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투성이이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사랑만은 넉넉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인생에 담긴 가치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철학을 말하고 있었다. 소박한 일상에서 우러난 눈부신 문장들을 눈에 담으며 그녀가 남긴 글들을 읽을 수 있어 감사했고 행복했다.

가느다란 눈이 반달이 되어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작가의 사진을 많이 본 듯하다. 환한 웃음 뒤에 굴곡진 삶이 있었다. 남편을 잃고 몇 개월 뒤에 하나밖에 없는 막내아들을 잃은 참척(慘慽)을 겪은 그녀의 고뇌가 몇몇 에세이에 담겨 있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라는 자식의 죽음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슬픔과 고통, 원망과 분노, 인정과 수용, 그리고 그리움의 감정들이 드러난 글을 읽으며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이 늘 짝꿍처럼 붙어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올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P.27 <수많은 믿음의 교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만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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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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