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래
역사연구자
한국 근현대사 공부합니다
쥘 베른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은 한중일에 각각 어떻게 번역됐나
쥘 베른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은 한중일에 각각 어떻게 번역됐나
『월세계여행』의 발견과 동아시아적 근대의 연쇄와 굴절 – 거듭된 중역과 축역의 문제
쥘 베른 원작의 『월세계여행(月世界旅行)』(博問書館, 1924)은 그간 한국에서 네 번째로 소개된 서양 과학소설로 알려져 있었다. 남북전쟁 종결 후 미국의 대포 마니아들이 모여 달 탐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내용이다. 전 세계의 방방곡곡과 땅 속, 바다 속을 탐험하는 내용의 소설을 써온 쥘 베른이 지구 밖 공간으로까지 시선(視線)을 돌리고, 동선(動線)을 확장해 본격적으로 우주를 탐험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1865~9년 사이 창작 발표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번역 소개된 것은 1924년에 이르러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실물이 발견되지 않아 그 실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으니 자세한 내용이나 의미를 밝히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1924년 박문서관에서 번역 출판된 『월세계여행』이 최근 발굴됐다.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전해오던 책의 실물을...
새롭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는 음악가 - 김창완
크리스마스 결핵 씰의 기원이 된 조선 최초 여의사 - 김점동
[영화 "오펜하이머"를 2배 즐기기 위한 선행학습] 6. 영화 <오펜하이머>는 놀란 감독의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 <오펜하이머> 관람 후기
[영화 "오펜하이머"를 2배 즐기기 위한 선행학습] 6. 영화 <오펜하이머>는 놀란 감독의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 <오펜하이머> 관람 후기
[주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스포일러를 참는다면 아래 내용이 영화 관람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랬을 거 같은데, 내겐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는 건 꼭 해야만 하는 여름방학 숙제처럼 일종의 피할 수 없는 ‘의무’였다. 30여 년 전 물리학과에 처음 입학했을 때 과학 또는 과학자와 사회의 관계, 책임, 그런 심각한 주제를 고민하게 만든 주인공이 오펜하이머였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은 이후 대학원 시절이나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까지 이어졌고 그래서 어쭙잖게 과학과 사회가 소통하는 방법을 나름 찾아 나서기도 했었다. 몇 년 전부터는 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면서 기회가 되면 항상 맨해튼 프로젝트를 학생들에게 소개해 왔다. 그 덕분에 핵무기 개발과정이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본정보는 어느 정도 친숙하게 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크게 흥행한다면 앞으로 수업에서 학...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9)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두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9)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두번째)
러시아에서 마리아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로 불린 마리아는 결혼후 큰 어려움 없이 지내게 됩니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러시아 여대공이었으며, 외가 친척들은 러시아에서 마리아를 잘 지낼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게다가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마리아의 사촌이었으며 또 마리아와 가장 친했던 크세니아는 게오르기 대공의 동생인 알렉산드르 대공과 결혼했었기까지 했었습니다. 마리아는 결혼후 두 딸인 니나와 크세니아를 낳았으며 게오르기 대공은 아내와 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대공들은 매우 부유했기에 마리아 역시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전혀없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에서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마리아는 원치 않던 결혼을 했기에 남편에게 냉랭하게 대했으며 러시아에 머무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며 화려한 상트페레트부르크의 궁정 생활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늘 충실했던 게오르기 대공은 마리아를 위해서 크림반도쪽에 아내를 위한 집을 마련해주고 평온한 생활을 할...
여의도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종로로 향한 까닭은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8)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첫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8)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첫번째)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공주는 그리스의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아내인 올가 왕비의 둘째딸이자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의 미니라는 애칭으로 가족들에게 불렸는데, 아마도 고모이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애칭이 미니였기에 고모와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위로는 오빠 셋과 언니 한명이 있었고 밑으로는 남동생 둘이 더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오빠인 니콜라오스와 언니인 알렉산드라와 함께 자라났으며 셋은 친한 사이가 됩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주 덴마크의 가족모임에 참석했고 어머니를 따라 러시아로 자주 갔었기에 이 때문에 많은 친척들을 만났습니다. 마리아는 이때 만난 고종사촌이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공주(에드워드 7세의 둘째딸)이나 러시아의 크세니아 여대공(알렉산드르 3세의 첫째딸)와 평생 가까운 사이로 남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언니인 알렉산드라보다는 덜 아름답지만 더 명랑하고 쾌할한 성...
관상용 꽃이 되길 거부한 기생 출신 열혈 독립운동가 - 정칠성
‘양호’한 삶과 ‘화폐’ 없는 인생 - 한대수
[영화 "오펜하이머"를 2배 즐기기 위한 선행학습] 5. 우라늄 농축, 그리고 신세계에 상륙한 "교황"
[영화 "오펜하이머"를 2배 즐기기 위한 선행학습] 5. 우라늄 농축, 그리고 신세계에 상륙한 "교황"
우라늄은 방사능을 처음 발견할 때부터 중요한 원소였고 핵분열 현상을 처음 발견하게 된 원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연히 핵무기를 만들 때 우라늄은 자연스럽게 우선적으로 고려대상이었고 누가 우라늄 광산을 차지할 것인가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컨대 그로브스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임명(1942년 9월18일)되고 근무하던 첫날 1,200톤의 우라늄 광산을 매입했으며, 핵무기에 사용될 우라늄235를 농축하는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테네시 주 오크리지에 부지를 매입했다.천연우라늄에는 핵무기에 쓸 수 없는 우라늄238이 99.3% 존재하고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235는 0.7%밖에 없다. 따라서 우라늄235를 순도 높게 추출하는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 이 과정을 우라늄 농축이라 부른다. 문제는 우라늄 농축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라늄235와 238은 원자번호가 같고 질량수가 다른 동위원소라서 화학적인 과정을 통해 두 원소를 분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동위원소의 화학적 성질이 거의...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7)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7)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는 그리스의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아내인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의 첫째딸이자 셋째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은 아마 고모이자 대모로 영국의 에드워드 7세와 결혼한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와 외할머니인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의 이름을 딴 것 일듯합니다. 그래서 원래 알렉산드라의 애칭은 “알릭스”가 되어야했지만, 이미 고모인 웨일스 공비의 애칭이 알릭스였기에, 알렉산드라는 가족들에게 그리스의 알릭스라는 애칭으로도 알려지게 됩니다.
알렉산드라의 아버지인 게오르기오스 1세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아들이긴했지만, 어린시절에는 국왕이나 왕위계승자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크리스티안 9세는 젊은 시절 덴마크의 왕위계승자가 되기전 덴마크 방계 왕가 출신의 군인으로 살았으며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티안 9세의 자녀들은 주로 고용인들과 생활하던 다른 왕가의 자녀들과 달리 부모와 함께 지냈으며 형제자매들과 함께 놀았었...
"절제된 욕망을 윤리적으로 실현하는 디자인은 가능한가" - 인간을 위한 디자인
"절제된 욕망을 윤리적으로 실현하는 디자인은 가능한가" - 인간을 위한 디자인
절제된 욕망을 윤리적으로 실현하는 디자인은 가능한가 - <인간을 위한 디자인>(빅터 파파넥 지음, 현용순 · 조재경 옮김, 미진사, 2009)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오늘날 그 자체로 이미 윤리적인 표징이자 과제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디자인만을 추구했던 역사에 대한 반성이자 그것들이 불러올 온갖 해로움과 불평등, 질병들에 대한 염려이자 걱정이다. 실제로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학적인 관념에 충실했다고 여겨지는 일반적인 디자인의 역사는 계몽과 폭력의 자국이기도 하며 적나라한 자본주의의 횡포를 가리는 미학적 치장이었을 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온갖 생태학적 사고를 내포하고,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충실하며, 필요와 쓸모 사이에 놓여있는 생산과 소비의 문제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절제된 욕망을 윤리적으로 실현하는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이는 지금까지의 디자인의 역사를 정지시켜...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6)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세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6)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세번째)
1913년 3월 18일 막 점령한 텟살로니키에서 평소와 같이 경호원 없이 산책중이던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가 암살당합니다. 50년 넘게 함께 산 남편의 죽음은 올가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올가는 남편의 죽음으로 공적인 의무에서 모두 은퇴한뒤 개인적 삶을 살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게오르기오스 1세는 즉위 60주년 기념식을 마친후 퇴위하고 개인적인 삶을 살려고 했었습니다. 아마 올가도 남편과 함께 남은 여생을 평온하게 보낼 생각을 했을 것이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이제 홀로 남은 여생을 보내야했습니다. 하지만 올가 삶의 비극은 이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올가는 남편이 죽고 아들과 며느리가 왕과 왕비가 된 뒤에는 이제 더이상 그리스에 남아서 왕비로 의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올가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스를 떠나 지내기로 결정했으며 늘 사랑했던 고향 러시아로 갑니다. 러시아에서 올가는 남동생인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이 물려받은 어린 ...
혼자서 경기를 ‘하드캐리’한 여자농구의 전설 - 박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