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애니'를 믿어선 안 된다. 오타쿠들은 취향이 이상하며, '명작'이란 평가를 남발한다. 나는 10년차 오타쿠인데, 캐릭터가 그림에서 움직이거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상황만으로 황홀해진다. 그러나 <장송의 프리렌>은 객관적으로 명작이다. 작화, 연출, 스토리, 전부 훌륭하다. 판타지나 서브컬쳐 문법에 익숙하면 좋고, 관계와 이별이 인생의 고민이라면 더더욱 좋다.
작품 전체가 목적지 없는 로드무비이기에 날짜는 불필요한 정보다. 그런데 매번 자막으로 알려주고, 마음을 흔든다. 시간을 세는 방법부터 은유다. '서기XX년'이 아닌, "용사 힘멜 사후 29년"이다. '객관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소중한 사람이 떠났으니 다른 정보는 사소하다. 인생은 새로운 국면이다. <장송의 프리렌>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장송(葬送)이다.
애도 과정이 겸허하다. 소위 '신파'가 없다. 프리렌은 울지 않고, 다만 현재를 살아간다. 관계에 끼인 채 해야 할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