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에 대한 응어리들. 이제는 살 수 있지만, 살 수 없다.

율무선생
율무선생 · 사회는 빛과 그림자의 산물이다
2023/03/24
학창시절 때 항상 응어리가 되어 남는 것이 하나 있다면 '알파' 물감 이나 '신한' 물감을 비싸서 잘 사질 못했던 것입니다.

저희 엄마는 유독 저에게만 '돈' 이야길 꺼내셨습니다. 제가 장녀이기도 하였고, 여자는 '공무원' 이 되는 것이 제일이라며 창작적인 일을 못하게 만드셨어요. 이를테면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흥미를 보였고 재능이 있단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일부러 두 눈과 두 귀를 막고 살았었습니다. 그 누구도 내게 돈으로 투자를 해주지 않으니 꿈은 좌절될 뿐, 소용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요. 제 미술 실력은 그래도 뛰어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중년 여성 선생님들이 교권을 잡고 있었어요. 매질도 없어질 무렵이었고 엄하기도 하시면서 '남자아이는 그래도 되지만, 여자아이는 안 된다' 가 명확한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었습니다. 한지에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 있었는데 중간 점검 시간에 저에게 매질과 엄한 잔소리를 자주 하시던 그 선생님이 저의 그림을 보고 놀라시면서 칭찬을 해주신 겁니다. 아이들에게 "너네 대충 그리지 말고 00이 처럼 이런 그림을 그려야 교실에 걸릴 수 있어. 이게 한국의 한지를 이용한 진정한 작품이야!" 라는 소리를 하면서요. 결국 그때 저의 그림은 교실 뒷편 칠판 한 가운데 자리를 장식 하였고 나중엔 잘 그렸단 소문이 퍼져서 다른 반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오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나중엔 방과후에 교장선생님도 와서 보고 가셨단 이야길 해주셔서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출처: 픽사베이

엄마는 딸에게 '예술적 재능' 있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듣는 일이 있어도 '미술 관련 상장' 은 쓰레기일 뿐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미술로 네가 어떻게 먹고 살려고' 라는 말을 주구장창 하셨었고, 물감 살 일이 있어도 '돈 아까워','안돼 그냥 사지 말고 친구한테 빌려달라고 해' 라는 등의 류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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