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나이팅게일의 꿈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3/06/01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들어선 마당은 벌써 한여름 같은 짙은 초록의 기운을 풍긴다. 어제까지 꽃잎을 말아 쥔 봉오리였던 것이 어느새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미가 되었다. 곁으로 와보라 손짓을 한다. 분홍 물감을 딱 한 방울만 태운 신비한 색의 장미는 독보적인 자태와 향기로 그 이름이 왜 장미인지를 알린다. 코를 갖다 대고 숨을 들이마셔본다. 

꽃구경도 잠시 발목까지 자란 잡풀들이 눈에 들어온다. 잔디 사이를 비집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싹을 틔운 풀은 이름이 없다. 땅과 맞닿은 곳을 잡고 힘을 주어 뽑아낸다. 힘 조절에 실패를 한 것인지 생각보다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있었던 것인지 손아귀엔 줄기만 들려있다. 호미를 가져와 뿌리를 캐낸다. 화려한 꽃들 틈에 이토록 깊게 뿌리를 내린 이름 없는 풀은 어떤 비밀을 지녔을까? 

한참을 상념에 잠긴다. 전화벨이 울린다. 

뭘 하고 있었냐는 선배의 물음에 풀을 뽑고 있었다 대답을 했다. ‘팔자 좋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비아냥이 들려온다. 선배는 간호학도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다. 한때 같은 병원 간호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상을 주고받다 뜨거운 도마 위에 있는 간호법에 대한 열변을 토한다. 최근에 친구와 선, 후배를 통해 간호법에 대한 변은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들었기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내 반응이 시큰둥하다 느꼈는지 열변이 사그라들고 조용해진다. 

“너 이제 다시 일 안 할 거야?”

“몰라요”

전화를 끊고 난 뒤 조금 전 기세는 어디 가고 금세 햇볕에 말라 숨 죽은 잡풀들을 바라보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픽사베이

신경외과 병동 3년 차 간호사였을 때다. 당시 내가 맡은 병실에 경막하 출혈로 뇌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병동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환자 A가 있었다. 야간 근무로 신규 간호사와 내가 한 팀이었다. 야간 근무는 3교대 근무 중 시간이 가장 길지만 특별한 이벤트나 응급상황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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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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