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동반자

빅맥쎄트
빅맥쎄트 ·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먹은만큼 행복하다
2023/02/15
20대의 아버지는 몸짱이었다. 젊을 때는 아무리 현장일을 많이 해도 거뜬했다는 아버지는 해외에 나가 수 년간 일을 하고 오기도 했다. 기억은 없지만 기러기아빠의 존재로 당시 우리가족은 큰 걱정 없이 행복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술담배를 달고 살았다. 술은 고되고 힘든 현장일을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현장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혼술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게 당연한 줄로 알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당신의 삶과 건강을 조금씩 잃어갔다.

아버지가 건강상의 문제로 수 년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평생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보험 영업을 잘할리 만무했다. 어머니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집안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 않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때 처음 알게된 것 같다. 집 안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터에 나가는 것은 곧 가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별탈 없이 사춘기가 지나갔다. 형과 나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아니었다.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드는 중고등학생 시절,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에 더 흥미를 보였다. 남들처럼 학원을 다니고 공부에 올인했다면 나의 삶은 달라졌을까.

지방 국립대에 입학했다. 제대 이후 인간의 형체를 갖추게 되면서, 그제서야 처음으로 '부모님이 힘들겠구나'는 생각을 했다. 전공수업과 시험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시험 전 시험범위를 통째로 다 외워 서술할 수 있으면 되었으니까. 시험은 보통 1~2문제로, 대단원의 제목이 그대로 나왔다. 문제를 읽고 소제목으로 목차를 쓴 다음, 세부 내용을 붙여 시간 내에 쓰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는 당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빅맥쎄트

제대 이후로는 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한 학기 등록금을 100만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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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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