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를 차리는 마음에 대해
“내가 머리 따고 똥 빼내고 다 한 거다. 말리지는 못했으니까 자기 전에 보일러 들어오는 데에 깨끗한 달력 깔고 멸치 죽 널어놔라. 그럼 하룻밤이면 다 마를 거야. 안 말리면 비리다.”
나는 그날 저녁 부엌 한쪽에 쓰지 않은 달력을 찢어 넓게 깔고 어머니 말씀대로 멸치를 널었다. 아이들이 코를 막고 한 마디씩 했다. 멸치 냄새가 너무 지독해. 이걸 왜 널어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방문을 여니 온 집안에 멸치 냄새가 배어있었다. 밤새 바짝 마른 멸치를 봉지에 주워담으면서 어린 시절 툭 하면 음식을 하던 우리집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맏이였다. 고조부모에 증조부모까지, 일년에 지내는 제사만 명절까지 합쳐 여섯번을 넘어가는 집, 그게 우리집이었다. 잊을만 하면 제사음식을 만들었다. 탕을 끓이고 전을 부치고 산적을 구웠다. 거의 엄마의 일이었지만 자라는 내내 곁에서 보고 또 보아온 나의 경험이기도 했다.
꼭 제사가 아니더라도 우리집은 일년 내내 음식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설에는 직접 쌀을 맡겨 뽑아온 가래떡을 살짝 말려 가늘게 썰었고, 추석에도 색깔별로 뽑은 반죽에 콩이며 밤을 넣어 송편을 손수 빚어 솔잎을 깔고 쪄냈다. 김장을 할 때면 고약한 냄새를 풍겨가며 멸치액젓을 직접 내리고 배추를 소금에 절여 양념에 버무렸다. 메주를 빚을 때가 되면 엄마는 불 앞에 서서 내내 콩을 저었고, 할머니는 그렇게 삶은 콩을 절구에 넣고 힘껏 빻았다. 그 모습을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언니와 나는 콩이 어느 정도 부서지면 그걸 한 데 모아 네모 모양으로 빚어냈다. 그렇게 만들어낸 메주를 몇 날 며칠 방 아랫목에서 곰팡이를 피운 뒤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 바짝 말렸다. 그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엄마는 직접 장을 담갔다.
할머니는 냉동실에 만두가 떨어지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달에 한 번 이상은 할머니와 엄마, 언니와 내가 거실에 모여 앉아 만두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