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써내려가는 글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04/09
갑자기 친구가 섬으로 날아왔다. 쿵짝이 잘 맞아 함께 있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다가 마냥 이어지는 친구. 아침에 비행기표를 끊은 친구와 그날 오후 얼굴을 마주했다.

이 친구와의 수다는 대게 이런 식이다. 근황 토크, 날씨 토크를 하다가도 갑자기 정의론을 말하고 양자역학을 들먹였다가, 함께 하던 시절 추억 이야기를 꺼내고 문득 지구온난화와 심리학과 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다 끄집어내 정답이 없는 토론들을 이어가는 것. 내게는 현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다 들어주고 받아주는 친구. 

이 친구와 이틀간 나눈 대화 중에 나를 가장 뼈아프게 한 건,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였다. 이 친구 말에 따르면 들어서 기분이 나쁘면 잔소리이고, 기분이 몹시 나쁘면 조언이라는 것. 얼룩소의 최근 상황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한 짓은 잔소리였을까 조언이었을까. 

엄마는 잔소리 대장이었다. 시시콜콜 사소한 모든 일들을 입에 담아 지적하는 사람. 불 꺼라, 숙제해라, 이건 왜 이러니, 저건 왜 저러니. 집은 감옥과 같았다. 엄마의 잔소리가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깔끔하고 손재주가 많고 명석한 엄마에 비해 나는 지저분하고 정리를 모르며 흘리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엄마의 눈에 만족스럽지 않았을 터였다. 

엄마의 잔소리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나는 한량끼 가득한 스스로의 습관까지 모조리 바꾸기에 이른다. 단지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때 나는 겨우 십대였다. 엄마는 자신이 짊어진 짐을 내려놓기 위한 감정해우소로 나를 택했다. 내가 행동을 고치면서부터 엄마의 잔소리는 엄마 인생에 대한 푸념으로 바뀌었고, 나는 엄마의 수없는 말 속에 갇혀버린 삶을 오래 살아야만 했다. 

잔소리는 내게 금기의 영역이었다. 사람을 진저리 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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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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