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나는야, 8억 체납자

진영
진영 · 해발 700미터에 삽니다
2023/02/27
인천공항.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얼굴엔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하다.
이제 잠시 후면 저 게이트가 열릴 것이고 그토록 기다리던 스페인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 가이드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지금 출국정지 상탠데...  모르셨어요?"
"네?  출. 국. 정. 지요?"
무슨 소리야. 그건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하는거 아냐?  소시민인 내가 왜?  느낌이 쎄하다. 급히 사무실에 알아보니 분당세무서에서 고액체납자로 나를 출국금지 시켰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여행이 어떤 여행인가.
두바이, 아부다비에서 1박하고 남프랑스로 날아가 니스, 깐느, 아를, 프로방스를 거쳐  스페인 전역을 돌고 포르투칼까지 12일에 걸친 황금노선 아닌가.
친구와 나는 이 여행을 위해 매달 10만원씩 꼬박 2년을 모았다. 친구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기도 안가겠다고 한다.
시간이 없다. 억지로 친구를 달래 게이트 안으로 밀어넣고 나니 밤 12시다. 쓰러질 것 같다.
휑당그레한 4월의 밤 인천공항은 너무 추웠다.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
우리가 분당의 그 땅을 산 건 분명 욕심이었다. 대출을 지나치게 많이 낸건 우리 잘못이지만 형님아우 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기를 칠 줄이야 꿈엔들 알았겠는가.  집을 3개월만에 지어주겠다던 아우는 고의로 준공을 미루어 2년이 되도록 준공이 떨어지질 않았다.
집 한 층을 전세 놓아 대출금을 갚으려던 처음 계획은 다 틀어지고 우리는 결국 이자 부담과 정신적 압박을 못이겨 그 땅을 고스란히 원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형님이라 불렀던 원 주인 A는, 우리에게 팔 때와 똑같은 땅값으로 돌려받되 세금과 공과금은 떠안기로 계약서를 썼다.  그 2년 사이 분당의 땅값이 다락같이 올랐으니까.
그래도 좀더 확실하게 하고 싶었던 남편은 양도소득세라는 말을 한 마디 더 적자고 했단다.
A는 양도소득세가 세금인데 뭐하러 2중으로 적느냐고 했고 옆에 있던 지인 B가, 만약 A가 양도소득세를 안내면 내가 대신 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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