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파란 빛이 방 안을 물들일 때,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다. 하얗거나 노란 빛이 아닌, 새벽녘에만 마주하는 그 빛깔은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을 구분짓는 경계선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내 방을 조금은 낯설게 만드는, 익숙한 새벽빛은 아쉽게도 너무 빠르게 다른 빛으로 물들어버린다. 오늘은 아침부터 조카를 보러가는 날, 오랜만에 새벽빛을 마주한다.
조카의 소아과 진료를 위해 종종 오픈런을 대신 뛰어주곤 했었다. 9시에 병원 문을 열지만, 8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대여섯명의 부모들이 계단에 줄지어 서 있곤 했다. 이번에는 제부가 직접 오픈런을 가기로 하고, 대신 그 시간동안 조카를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른 아침에 마주한 조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금세 품 안으로 달려와 안긴다.
품에 안긴 채 손가락으로 가고 싶은 곳을 가리키더니 도착지는 책장 앞이다. 보고 싶은 책인지, 혹은 그냥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인지 책 한 권을 꺼내 건네주더니 무릎에 털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