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
순간을 기억하다 : 10월의 멋진 하늘
연하일휘
연하일휘

가을에 더위를 타면...?

월요일, 아침에 집을 나서며 옷을 고민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느낀 추위에 두툼한 옷을 입어야 할까. 혹은 한 낮의 햇살을 대비해 조금 얇은 옷을 입어야 할까. 외출 전, 강아지 산책을 다녀온 덕분인지 몸의 한기는 많이 사라진 터라 조금 가벼운 옷차림을 선택했습니다. 반팔티에 얇은 긴 츄리닝바지, 그리고 살짝 도톰한 짚업 후드를요. 어제 아침은 아버지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어요. 막상 운전을 시작하니, 이른 아침부터 햇살은 또 어찌나 따사롭던지. 빨간 신호등과 마주했을 때, 위에 걸쳤던 짚업 후드를 벗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은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어요. 아버지는 춥다며 열선 시트를 켜고 계시기에, 아버지 무릎에 겉옷을 그대로 덮어 드린 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올라가 그늘이 있는 자리를 찾아 헤맸어요. 다행히 저 구석, 키 큰 나무들이 길게 늘어진 그늘을 마련해 준 곳에 자리를 잡고 창문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눈을 찌르던 햇빛에 가려졌던 하늘을...
기후/환경 · 생활/사건사고 · 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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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일휘
연하일휘

얽히는 기억들

"언니, 뭐해?" "그냥 있지. 왜?" 푸르스름한 달빛이 가로등 불빛에 가려진, 꽤 늦은 시간. 갑작스레 걸려온 여동생의 전화에 다급히 울먹임을 추스렸다. 알 수 없는 조금의 답답함과 우울함에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찾아낸 실마리에 눈물이 터져나오던 찰나에 걸려온 전화였다. "나랑 응급실 같이 갔다올 수 있어?" "왜? 어디 아파? 다쳤어?" 눈물도, 우울함도 놀람 속으로 가라앉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나선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인상을 찌푸리는 여동생의 발목을 흘깃 쳐다보며 시동 버튼을 누른다. 발목을 접질렀다던 여동생은 통증과 부기가 심했다. 이대로라면 아침이면 아예 걷지 못할 것 같아 응급실행을 결정했단다. 아마 통증 그 자체보다는 "걷지 못함"때문에, 이제 5개월된 조카를 위하는 마음일터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아버지를 모시고 오다니던 응급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신음소리와 바쁜 발걸음이 지워진, ...
생활/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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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일휘
연하일휘

생존 신고

두툼하게 바닥에 깔아 놓은 요 위에 마치 바위 덩어리 하나가 얹힌 듯합니다.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묵직함이 솜이불의 무게가 더해지며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그 감각, 입가에 느껴지는 뜨거운 공기가 감기에 걸렸음을 증명합니다. 하루정도 앓고 지나간 감기는 금세 호전이 되었기에 마음을 놓았었습니다. 얼마 뒤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동생과 잠투정이 심해진 조카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뒤에 다시 찾아온 감기는 몽롱함과 어지러움을 함께 선사합니다. 다만, 아픈 몸은 잠들기를 거부하고, 몸을 뉘어 쉴 시간이 부족한 요즘은 쉽게 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여느때와 달리 가벼운 몸은 밖으로 나서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가볍게 옷을 걸치고 조금 멀리 떨어진 카페로 짧은 산책을 나섭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지만 내리쬐는 햇살이 찬 공기를 감싸 안아 걷기 좋은 날씨입니다. 글을 쓰지 않은 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
생활/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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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사탕나무
삼가 고 김치냉장고의 명복을 빈다.
연하일휘
연하일휘

삼가 고 드라이기의 명복을 빌어야 하는데.....

냉매가 유출되는 경우는, 냉매만 보충해 주면 되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관 자체를 갈아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에어컨의 경우에도 냉매는 주기적으로 충전하는 것이 아니라, 관 설치가 잘못된 거니 관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권고 사용기간이 10년인 것을 저는 처음 알았어요. 지금 사용하는 냉장고도...할머니께서 쓰시던 것이니 10년은 넘어가는데. 앗, 저 친구도 어느샌가 훅 가버리면 어쩌나...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그런데 사실 더 걱정되는건 드라이기예요. 예~전에. 지금은 얌전하지만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우리 멍멍이가 12년 세월동안 유일하게 친 사고! 드라이기 전선을 씹어 뒀더라구요. 드라이기를 켜자마자 스파크가 튀기에 놀라서 코드 뽑고 던져놨는데, 봤더니 전선이 끊어질 듯 말 듯 달랑달랑거리는.....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 수리를 해 주셨었어요.  아버지께서 전기관련 쪽으로도 일을 하신 적이 있으셨었거든요. 물론 뇌졸중이 오기 이전이셨지만요ㅎㅎ...
경제/소비자 · 생활/사건사고 ·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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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일휘
연하일휘

그냥저냥 하루하루

"다시 열심히 글을 쓰자!"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스르륵 5일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벌초가 있었어요. 부지런하신 친척 어르신들에 발맞추다보니, 일요일에는 잠이 부족한 채 활동을 하다 그대로 뻗어버리고, 그 이후부터도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음, 글을 쓰지 않은 기간동안 어떤 하루를 보냈느냐고 정의를 내린다면, 말 그대로 '그냥저냥' 지나간 하루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다시 이 아티스트의 노래에 푹 빠져 있어요. 우연히 목소리를 한 번 듣고 반해버린 뒤 종종 노래를 찾아 들었는데, 평소에는 파워풀한 목소리라면 이 노래는 부드러운 느낌과 편안한 가사가 참 좋더라구요. 저는 그냥저냥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랍니다. 아버지께서 퇴원하신 후 통원치료를 시작하셨어요. 사실 통원치료라 하기에는 애매한, 입원하며 여러 피수치들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서 여러 과들을 번갈아가며 다니는 중입니다. 안 그래도 지병이 많은데, 이번에 여러 과들을 다...
생활/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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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일휘
연하일휘

사치스러운? 만족스러운!

창문을 넘어 들어온 햇빛이 공기를 달구는 시간이다. 한동안 비가 내리며 흐린 날씨 속에서 여름의 마지막을 느끼고 있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오랜만에 한낮의 더위에 시달린다. 빨래 거리들을 잔뜩 꺼내 세탁기를 돌린다. 공기를 통해 전해지는 열기는 끝나지 않은 여름의 흔적과 함께 작은 기대감을 선사한다. 오랜만에 비 걱정없이 빨래를 말릴 수 있지 않을까. 세탁기의 알림음이 들려올 때 쯤, 흐릿한 하늘이 창 너머를 가득 채운다. 일기예보에서 떠 있는 비 소식과 더불어 부풀었던 기대감이 가라앉고 만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맑더니, 제멋대로인 하늘에게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날이다. 속절없이 하늘을 노려보다 다른 집 옥상마다 널려있는 빨래들이 눈에 들어온다. 음, 나도 옥상에 빨래를 널었다가 비가 내릴 때 쯤 미리 걷어오면 되지 않을까. 언제나 시도를 하지만 잦은 실패가 찾아왔던 도전을 또다시 시작한다. 오랜만에 한가득 돌린 빨래들을 이대로 집 안에서만 널기에는 너무...
생활/사건사고
15
연하일휘
연하일휘

아파도 괜찮은 시작이야.

눌려있던 팔에 피가 다시 흐르며 저릿한 감각이 몰려온다. 평소보다 짧은 수면 시간에도 눈이 떠진 것은 아마 불편한 자세 때문이었나보다. 팔을 주무르며 몸을 일으킬 때, 허리쪽으로 뻐근함이 감지된다. 잠을 대체 어떤 자세로 잔거야- 작게 기지개를 펴 보지만 허리의 불편함이 쉬이 가시지를 않는다. 예방접종의 후유증으로 몸살이나 근육통이 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잠을 잘못 잔 것일까. 자리에 누워 허리를 반듯이 펴 보지만 도통 차도가 보이질 않는다. 약을 먹기는 싫은데. 허리 통증에 종종 걷기가 효과가 있었기에 약 대신 아침 산책을 선택한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조심스레 몸을 펼치며 걸으러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몸이 무거운 느낌이다. 다리마다 무거운 추를 달아 놓은 듯, 걷기 싫다는 투정이 들려오는 듯하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찾아 골목을 거니던 중, 부모님 댁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집 앞에 서 있는 동생네 부부와 어머...
생활/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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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笛跡)
토요 아침 詩食會
연하일휘
연하일휘

쌤, 언제 가르쳐 줄 거예요?

아이들에게 약속 하나를 하고선 그대로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무심했던 것일까요, 혹은 정신이 없어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일까요. 몇 번의 사과를 반복하다 오늘에서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한 친구가 "시가 너무 싫어요."라는 말을 꺼냈었습니다. 그냥 읽으면 돼- 문제를 먼저 보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힌트를 다 주니까, 그냥 내용만 파악하듯 읽으면 돼- 아직 중학생인 그 친구는 교과서에 나온 시와 해설을 다 외운 채 시험을 보는 것이 익숙해서, '시'는 그저 어렵고 어려운 것이라고만 생각이 드나 봅니다. 한동안 시를 필사한 적이 있어요. 그저 따라 적으면서 대체 뭘 얘기하는걸까, 혼자 골몰했던 적이 있었죠. 그러다 누군가와 그 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조금 놀란 적이 있습니다. 상대는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징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거든요.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니 조금은 눈이 반짝거립니다. 시를 읽...
문화/예술 · 사상/철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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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일휘
연하일휘

다 안개때문이야.

안개가 자욱하게 낀 풍경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흐릿하게 가려진 정경은 늘 보던 풍경마저 생소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일 터다. 조금 더 안개 깊숙한 곳까지 걸어나간다면, 안개를 한껏 품에 안을 수 있지 않을까. 걸음을 옮겨 보지만, 안개의 깊숙한 곳과의 거리는 쉬이 좁혀지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안개에 대한 작은 상상은 분위기에 취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했다. 그러다 그 상상을 접어두게 된 것은 운전이라는 계기 덕분이었다. 단 한 번, 남동생의 부탁으로 안개가 자욱한 날 운전을 했었다. 머릿속으로만 이어나가던 안개의 깊은 곳에 도달했을 때, 상상의 실현이라는 희열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엄습했다. 마주오는 차의 전조등 빛마저 코 앞에 다다르기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핸들을 그저 손으로 꽉 쥔 채 조심스레 차선만을 살폈었다. 이후로 안개를 바라볼 때면, 당시의 작은 두려움과 걱정 어린 한숨이 먼저 새어 나온다. 저 멀리 한라산이 자욱한 안개에 가려진 날이다. 흐린 하...
생활/사건사고
4
연하일휘
연하일휘

욱신거리는 '두부 과자'에 도전!

냉장고 한 편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두부들은 풍족함과 함께 조급함을 선사한다. 유통기한 임박 제품들을 받게 되었는데, 어째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는다. 유통기한에서 1주일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상 지나가면 아무리 나라 해도 조금 찜찜해지는데. 언두부로 활용한다는 방법이 있지만, 언두부 자체의 식감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만 하던 시간들이 흘러간다. 두부로 뭘 해먹으면 좋을까. 찌개를 끓이면 금세 먹을테지만, 슬슬 다른 두부 요리들이 먹고 싶어진다. 두부김치? 김치를 볶으려면 참치가 있어야 제맛인데, 비상식량으로 쌓아두었던 참치가 끝이 나 버렸다. 아직 장을 보러 가기에는 좀 귀찮은데. 두부를 좋아하면서도 두부조림은 도통 끌리지를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두부 과자'라는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저 두부의 물기를 빼고 얇게 썰어서 전자렌지에 돌리면 된다고? 간편한 레시피가 딱 내 취향이다. 허브솔트는 취향에 따라서 뿌리거나 말거나. 그러면 한 번 해 봐야지....
생활/사건사고
14
연하일휘
연하일휘

병원은 가기 직전까지가 제일 무서워.

조금 열어둔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스며든다. 빗방울들도 방 안으로 조금 들어온 것일까. 차가워진 몸을 일으키며 시간을 확인한다. 요 며칠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었는데,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이 뜨인 건 아마 빗소리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오늘은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2월, 자궁경부암 검사를 진행하며 시행한 초음파 검사에서 자궁 내에 근종과 용종 두 가지가 발견되었었다. 근종은 큰 걱정이 없는데 용종에 대해서는 제법 크기가 커 보인다며 선생님이 재검사를 제안했었다. 생리가 끝나자마자 와야 정확한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하기에, 딱 오늘이 적기인 날이다. 오늘 가야 하는데,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데. 막상 병원가는 날 아침이 되니 두근거림에 안절부절 못하고 만다. 8시 30분이 되어 예약 전화를 건다. 다행히 9시 20분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단다. 옷을 갈아입고 우산을 챙겨들며 밖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병원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차라리 빨...
생활/사건사고 · 건강/보건
23 1
연하일휘
연하일휘

선의를 베풀 수 없는 사회

"쌤, 저 모르는 사람 차 타고 학교 갔어요." 새벽부터 아침까지, 간헐적이지만 거세게 비가 쏟아진 날이었다. 비가 그쳤나 싶으면 잠시 뒤에 다시 거세게 쏟아붓고, 태풍이라도 오려나 의심이 들었던 날. 우산 없이 등교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쏟아진 비에 가게 처마에서 비를 피하던 중이었단다. 뛰어가기엔 너무 거센 빗줄기라 발만 동동 구르다 집에 전화를 걸었던 그때, 한 아주머니께서 아이에게 말을 건네셨다. 아이는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아주머니의 차에 올라탔고, 덕분에 비를 맞지 않고 등교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해 준다. 등줄기를 흐르는 소름과 함께 찾아온 혼란스러움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그 아이의 친구였다. "야, 너 미쳤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나 역시도 그 친구의 말에 동의를 한다. 너 큰일 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야- 아마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보고, 선의를 베푼 행위였을 테다. 내 딸도 등교를 하다 우...
생활/사건사고 · 젠더/청년/교육 · 노동/인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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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일휘
연하일휘

변덕쟁이 하늘, 너무한다. 너무해!

밤이면 선선한 공기에 잔뜩 움츠리며 창문을 닫거나, 혹은 선풍기를 끄게 된다. 밤 뿐만 아니라 한낮에도 한동안은 에어컨 없이 생활을 해도 될 정도로 쾌적했었는데, 다시 치솟는 실내온도에 에어컨으로 손이 향한다. 나는 잘 버티겠다만, 강아지가 아프면 안 되니까- 작은 핑계를 대며 인위적인 선선함에 몸을 맡긴다. 바깥이 그리 더운 것은 아닌데, 집안의 공기가 유독 덥게 느껴지는 날이다. 에어컨을 켜고,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창문 너머를 훔쳐보다 세탁기에게 일을 맡긴다. 빨래가 잘 마를 것만 같은 날, 작은 흥얼거림으로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넣은 뒤 세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어라, 핸드폰을 만지작대다 우연찮게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비 소식이 있다고? 오늘부터 며칠간 내리 비가 내린단다. 빨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변덕스러운 하늘을 믿기 어려운데, 이를 어쩌나. 세탁기가 일을 다 마칠 동안 잠시의 고민을 반복하다 결국 집안에 건조대를 펼쳤다. 빨래들을 널어놓고, 에어컨의 제습모...
생활/사건사고
4
연하일휘
연하일휘

새로운 습관 만들기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중이다. 아침에 눈을 뜨며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습관. 나이가 들어가며 관절이 안 좋아진 강아지를 위해 바닥에 요를 깔고 생활을 하는 중이다. 아침마다 이불과 요를 잘 개서 이부장에 넣어놓고, 자기 전에 다시 꺼내서 곱게 깔아놓는 일은 시간이 얼마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몸 깊숙히 내재된 귀차니즘은 '굳이?'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댄다. 종종 유튜브를 통해 자기계발과 관련된 영상들을 보던 중, 많은 영상에서 청소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거나, 혹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라거나. 그 중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며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일이라 하니, 꾸준함 뒤에 무언가 작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 하나로 귀찮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사실 요라고 해봐야 얇고 작은 패드와 비슷한 녀석이라 맨바닥에 눕는 것과 촉감 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전기장판과 두툼한...
생활/사건사고
6
연하일휘
연하일휘

잘못된 선택

밤바다를 보러 걸어가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해가 진 이후 적당히 선선한 바람, 그리고 밤낚시를 즐기느라 다소 어수선한 부두는 안전의 측면에서도 꽤 좋은 선택지이다. 그저 밝은 곳들만을 헤매고 다니다 저 멀리에서만 바라보던 등대가 궁금해진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이지만, 낚시꾼들이 저마다 비춰놓은 불빛들과 한치잡이 배들의 불빛이 어둠을 잠시 밀어낸다. 꽤 먼 거리이리라 생각을 했지만, 시작점에서 등대 끝에 도착하니 얼추 1.2km정도를 걸었다는 알림이 뜬다. 밤의 바다는 꽤 쾌적한 바람을 선사하지만, 아직 여름은 여름인 듯 살짝 등이 젖어든 티셔츠가 조금은 불편하다.  먼 곳에서는 그저 빨간 등대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가까이서 바라보니 꽤 운치가 있다. 파도소리와 함께 낚시줄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목청이 큰 아저씨들의 떠들석한 수다 소리까지. 바람에 실려오는 것은 냄새만이 아닌가보다. 먼 곳까지 빛을 전달하는 등대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꽤나 커다란 크...
생활/사건사고
16
연하일휘
연하일휘

엄마가 의사를 이겼어!

달콤한 커피 한 잔을 타서 병원을 올라간다. 퉁퉁 부어오르며 심한 통증이 찾아오던 아버지의 다리는 다행히 가라앉았다. 어머니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되며 어머니의 눈물이 그친 덕분이다. 그리고 작은 자부심이 더해진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도 함께 배시시 웃게 된다. "엄마가 의사를 이겼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머니가 밝게 외친 한 마디였다.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여러 검사를 진행하고,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었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이전에도 통풍으로 발과 종아리가 부어올랐던 것이 떠올랐다 한다. 의사에게 통풍인 것 같다며, 통풍 약을 처방해달라 부탁을 했고 그 약의 효과가 돌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버지는 통증과 붓기가 줄어들며 어머니의 한숨이 줄어들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말을 전한다. 원인을 찾느라 며칠 더 늦어졌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고, 어머니가 먼저 발견한 것이 다행이...
생활/사건사고 · 건강/보건
20
연하일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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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대.

바다를 보고 싶었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푸른 빛이 아닌, 소금기가 배어든 바다내음 사이를 걸어가고 싶어졌다. 한동안 아픈 몸이 단순히 몸의 문제만이 아니란 것을 느꼈기에, 짓누르는 감정들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발걸음을 바다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미 어둠이 가라앉은 풍경은 걸음을 멈출 이유가 되지 않았다. 단 하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함 하나 만을 노랫소리로 가라앉힌다. 한숨이 아닌 약간 가빠진 숨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온 것이 참 오랜만이다. 무더위가 이어졌다지만, 더위를 잊어버린 날들 속에서 흘러내린 땀방울도 조금 어색하다. 바다와 가까워지며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열이 오른 몸은 갈증을 호소한다. 텀블러에 얼음을 잔뜩 담고, 시원한 커피를 가득 담아 왔다면 좋았으련만. 아, 그 텀블러는 지금 어머니에게 있구나. 어머니의 눈물을 전해들은 날, 작은 위로라도 건네려 병원으로 향한 날. 녹아버린 얼음에 달콤한 커피의 맛이 희석될까봐, 커피를 ...
생활/사건사고 · 건강/보건
25 5
연하일휘
연하일휘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

파란 하늘에 몽실몽실 뭉쳐진 구름들, 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피부가 따끔거린다. 한동안 일기예보를 노려보며 빨래를 해도 되나 고민을 했던 것이 옛일이 되어버렸다. 건너편 집 2층에서 멍멍이들이 잔뜩 짖어대는 모습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옥상에서 빨래를 넌다. 쟤네는 맨날 나만 보면 짖더라- 꽤 더운 날, 집으로 들어가 문명의 이기를 즐겨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무시한다. 어라, 평소라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을 텐데 웬일로 어머니께서 먼저 전화가 오셨다. 기쁜 소식 알려줄까? 며칠간 피곤함에 젖어들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꽤 밝았다. 아버지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온걸까. "지금 5인실이잖아. 근데 오늘 다른 환자들 퇴원해서 병실에 두 명밖에 안 남았어. 남은 한 사람도 내일 1인실 간다더라." 현재 아버지 외에 남아있는 다른 분은 80대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식사도 넘기지 못해 링거를 통해 영양제를 맞고 계신데 섬망이 심해 1인실로 가 안정을 취할 ...
생활/사건사고
13 1
연하일휘
연하일휘

아이들과 '광복절'에 대하여.

해방이 되던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여름 방학으로 놀던 때라, 나는 궁금해서 학교엘 가 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한 오십 명이나 와 있었다. 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은 아직 몰랐고, 일본이 전쟁에 지고 항복을 한 것만 알았다. - 채만식 '이상한 선생님' 中 "퀴즈! 해방이 되던 바로 그 이튿날이면 몇 월 며칠이게?" "어, 8월 17일!!!!" 채만식의 '이상한 선생님' 소설을 읽던 중 아이들에게 돌발 퀴즈를 냈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돌아온 대답에 타박이 절로 나온다. 헷갈린거예요!! 라는 변명을 하기도 하지만, 주위 아이들의 웃음이 쉽게 그치지 않았다. 정말 헷갈린거 맞지? 8월 15일, 광복절이다. 아이들에게 태극기를 내 걸어야 한다는 말을 건네 주었을 때. 아이들은 집에 태극기가 없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꺼냈었다. 가만 있어보자. 그러고보니 태극기는 어디서 구입을 해야하지? 우리집은 주민센터에서 구입을 했던 것 같은데. 찾아보니 각 지역의 주민센터, 인터넷 쇼핑몰, ...
생활/사건사고
5 1
수지
잊고 있었던 이름을 꺼내보았다
연하일휘
연하일휘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면.

수능을 볼 땐, 그리고 조금 더 어렸을 땐. 그저 교과서에 나와있는 해설들에 의지하며 윤동주의 시를 읽곤 했었죠. 그런데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시를 다시 읽게 되니 느낌이 새롭게 다가오곤 합니다. 일제 강점이라는 그 시대에서,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적어내려가며 그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시어 하나, 시구 하나에 담겨있는 윤동주라는 시인의 마음을 다시 가늠하게 됩니다. 저는 시를 읽을 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곤 해요.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인지, 언제나 시를 읽게 되어도. 마치 국어 문제를 풀 듯이 파악하게 됩니다. 그냥 문제를 풀 듯이 힌트를 찾아가며 읽는 것은 익숙한데, 그게 아닌 시를 읽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늘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유일하게 윤동주의 시를 읽을 때면,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게 되는 듯합니다. 아마 윤동주의 삶을 알고, 그의 작품에 담긴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덕분일까요? 밑줄을 그으며 시어의 상징성을 따지지 않은채, 그저 읽어내려...
생활/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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