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적응기]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짙어지는 그리움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4/01/07

“슨생님, 내가 요즘 깜박깜박하고 정신이 더 없어지는 거 같어. 이러다가 정신 놓고 혼자 길거리 돌아 댕길까 겁이 나서 왔다니까.“

 혼자 사시는 일흔여덟의 김순이(가명) 할머니의 얼굴에는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와 할머니밖에 없는 조용한 상담실에 그녀의 한숨 소리가 유독 길고 깊게 들렸다. 검사 전 할머니의 긴장을 풀어드리기 위해 눈을 맞추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젊은 날의 자신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지는 듯했다. 

차분하게 검사를 받으신 할머니의 결과는 다행히 ‘정상’으로 나왔다. ‘정상’이라는 한 마디에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한숨은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이내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는 순이 할머니를 보니 덩달아 기뻤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 부모님도 떠올랐다.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루하루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둔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신조차 희미해지는 것을  자각한다. 사람은 태어나 누구나 늙는다. 생의 주기에 따른 당연한 과정이지만 나는 과연 ‘늙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늙는 것은 아니기에 천천히 나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살피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검사받느라고 고생 많으셨어요. 또 깜박깜박하고 생각이 잘 안 나는 것 같으면 또 오셔요.”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또 굽혀 고맙다고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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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schiz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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