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보고싶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한다.

진영
진영 · 해발 700미터에 삽니다
2023/02/09
중국 연태에 도착한 건, 개학을 며칠 앞 둔 2월 중순이었다. 이제 개학을 하면 나는 연태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나는 대학원을 나온 것도 아니고 더구나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니 말이다. 내가 거기서 강의를 하게 된 이유는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과 교편 잡은 경험이 있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남편이 연태대학이랑 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 중국에 누군가 가 있으면 좋겠다 했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가겠노라고 손을 번쩍 들었다.
도대체 무슨 용기였을까. 
무모하다고 밖에 볼수 없는, 한 마디로 겁없고 호기심 많은 내가 내린 결정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그 자체였다.  나의 결정은 딸의 장래까지 송두리채 바꿔놓았다. 멀쩡하게 고등학교 잘 다니던 애의 손을 잡아끌고 중국으로 날아갔으니까.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거기다 또 한 가지. 연태대 쪽에서 나더러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냐고 했을 때, 할 수 있다고 주제 파악도 못하고 속 시원하게 대답해 버렸으니 그때의 나는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도착 하자마자 내겐 책 한 권이 주어졌다.
한국어 회화책이었다.
그날부터 방에 틀여박혀  그 책을 낱낱이 파헤쳤다. 몇 줄 안되는 짧은 대화 속엔 수많은 문법과 발음법칙이 숨겨져 있었다.
이 한국어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수업하여 집중시킬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국어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한국사람이고 학교에서 국어를 공부했지만 막상 다시 파고들어 보니 나의 지식이란 참으로 보잘 것 없고 부끄러운 수준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겁도 없이 가르칠 수 있다고 한 저 밑바닥엔, 어릴 때 좋은 선생님들로부터 제대로 문법을 배웠다는 자부심. 다른 과목 보단 그래도 국어는 좀 했다는 자만심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절실히 깨달아갔다.
다행히 한국어와 깊이 친해지는 건 정말 신선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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