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화
· 봄의 정원으로 오라.
2021/11/23

오늘은 모처럼 집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열 몸살 기운이 돌기도 했고, 한 번쯤은 병결을 내고 학교를 푹 쉬어보고 싶었거든요. 수능도 끝났겠다, 학교에서도 오전 수업만 하겠다. 이참에 평일 하루는 제대로 쉬어 보자 싶더군요.

평일인데 6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니.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더 취한 수면은 다디단 단잠이었습니다. 학교로 출근하시는 어머니를 배웅한 후 스트레칭을 하고, 침구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키우는 고양이의 밥과 물도 갈아주고, 빗질도 해주고. 설거지와 거실 쓸기, 분리수거와 빨래까지. 집안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더랍니다. 정돈이 끝난 후에는 갑자기 파스타가 먹고 싶어져 영화 한 편과 함께 봉골레 파스타를 먹었네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라 할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누군가를 배웅하고, 사람과 대화하고, 집을 정돈하고, 무언갈 하고 싶다 갈망하거나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오늘 한 모든 일들은 자그마치 반년 전의 저라면 하지 못했을, 또한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멈춰있을 수는 없었기에

제게는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분한 심정, 억울한 감정, 속상한 감정. 쌓아 두면 나에게도,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독이 되는 부산물들을 쌓아두는 습관이었죠.

늘 저보다 고통받는 어머니를 봐왔고, 고통받는 다른 가족을 봐왔고, 조금은 복잡한 사이에 껴있었고. 제 말을 하기보다는 가족들의 말을 묵묵히 듣는 사람으로 자라오며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앞에서 오고 가는 부모님의 고성, 눈을 감으면 아직도 생경한 이모의 멸시 어린 시선과 말들, 네가 무슨 재주로 글을 쓰냐며 깎아내리던, 당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험담을 제게 하시던 외조모님, 그리고 또 무수한 것들. 그런 것들을 묵혀 온 지 8년.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가족들은 정리되었고,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두가요. 그들의 매듭이 풀리고 새로이 나아갈 때, 저는 무수한 이야기와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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