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05/31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픽사베이


북 소리를 뒤덮는 꽹과리 소리에 맞춰, 자줏빛 무복이 흩날린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며 춤을 추는 옷자락이 빠른 듯 느리게, 공간을 메워간다. 작아지는 악기 소리에 구슬프게 흐르는 무가, 손끝에 맺힌 한을 좇으며 떨림을 전해받는다. 때론 눈물지으며, 구성진 노랫가락의 파도 속에 자줏빛 옷깃이 눈을 어지럽힌다. 아니, 어지럽혔을 것이다. 마주하지 못했던, 더이상 마주할 수 없을 그 장면을 상상한다.

할머니의 자줏빛 무복이 햇빛 아래에서 고운 자태를 뽐내는 것을 보며 수없이 머릿속으로 그렸었다. 이 옷을 입은 할머니는 무척 고왔겠지. 그리고 그 고운 모습으로 고운 선을 그려냈겠지. 비밀로 해 두라는 부모님의 권유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상상을 직면하지 못한 것은, 혹여 누군가에게 잘못된 시선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부모로서의 염려가 있었다. 우리만 알아야 했던 비밀은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서야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 우리 할머니는 심방이었다.


(※심방 : 제주도의 무속인, 무당)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 세 아들을 키워냈다. 정확히는 세 아들을 낳고 쫓겨났다. 시댁의 오갈데 없는 조카들을 몇 년씩이나 품어 키운 그녀였다. 혈연들조차 손을 내밀지 않은 이들을 제 자식처럼 뒷바라지를 하였지만, 죄인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잘못이자 죄는 뒤늦게 받은 신내림이었다. 남편은 폭력으로 그녀의 죄를 씻어내려 하였다.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남편은 그녀를 일본으로 내쫓아버린다. 혈혈단신의 일본 생활, 간신히 조국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눈 앞에 들이 밀어진 이혼서류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세 아들과의 연이 끊어지며 혼자가 되어 버렸다.

자식들에게도 이어진 남편의 폭력은 큰아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살기 위해 집을 나온 큰아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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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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